[문화 칼럼/강유정]유럽이 김기덕에 열광하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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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영화평론가
강유정 영화평론가
김기덕 영화에 대한 대중의 보편적 반응은 ‘불편하다’이다. ‘불편하다’라는 말 속에는 여러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우선 그것은 표현의 잔혹성에 대한 감각적 거부 반응이다. ‘섬’에서 반쯤 회를 뜬 물고기를 다시 놓아주는 장면이나 낚싯바늘을 삼키는 장면을 볼 때처럼 말이다. 두 번째 불편함은 김기덕 영화가 우리가 상식이라 부르는 질서를 종종 위반하는 데에 따른 반응이다. ‘나쁜 남자’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창녀로 만드는 설정 같은 것 말이다. 마지막 불편함은 김기덕 영화가 그려 내는 그 모든 불쾌한 이미지들이 역설적이게도 매우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말하자면, 김기덕이 그려 내는 영화 속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불편한 진실이 담겨 있다.

2012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유럽 영화제가 김기덕 영화에서 탐색해 온 세계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준다. 김기덕의 작품 세계는 삶의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탐구와 그 세상을 관통해야만 하는 인간의 비애로 압축된다. 지옥처럼 잔인하고 정글처럼 난폭한 세상을 견뎌야만 하는 삶의 아이러니…. 김기덕은 이것이야말로 삶의 불편한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럽의 영화제들이 한국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실마리는 한국의 지역성 그 자체에 있었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나 ‘씨받이’ 같은 작품이 주목받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유럽이라는 서구 국가에서 전혀 몰랐던 이방의 문화와 역사, 그 숨은 이야기들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머나먼 유럽에서, 한국 영화는 신비롭고 이채로운 지역성(locality)으로 주목을 끌었던 셈이다.

잔혹한 장면엔 ‘불편한 진실’ 담겨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을 끈 1세대라고 한다면 박찬욱이나 홍상수 이창동 김기덕 감독은 2세대 감독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 2세대 감독들은 한국의 지역적 특수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삶과 죽음, 욕망과 같은 보편적 문제를 다뤘다.

그렇다면 김기덕 감독에 대한 유럽의 애정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첫 번째, 김기덕의 영화는 꽤나 상징적 이미지들로 환유(換喩·어떤 것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것을 빌려서 표현하는 것)된다는 특성이 있다. 김기덕은 이야기를 매끄럽게 연결해 메시지를 전달한다기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채워 넣는다.

이미지로 연쇄되는 김기덕의 방식은 미장센이라고 부르는 예술 영화의 표현 방식을 잘 보여 준다. 김기덕은 폭력이나 욕망과 같은 오래된 주제를 그만의 강렬한 미장센으로 새롭게 그려 낸다. 그것을 표현해 내는 방식도 과격하다. 그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자상(刺傷)의 이미지나 신체 훼손의 장면도 마찬가지다.

이 잔혹한 장면들은 단순히 불온한 욕망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 논리 너머에 있는 삶의 진실들을 길어 올린다. 정교한 언어 밑에 숨어 있는 삶의 부조리함이 그의 영화 속 이미지를 통해 거침없이 자극되는 것이다.

김기덕 영화에 대한 호불호(好不好)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표현의 잔혹성은 선정성이나 외설성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대개 평범한 관객들은 영화관에서 현실을 잠시 잊고 불편한 진실을 묻어 두고 싶어 한다. 대중에게 영화는 여가 선용의 한 방식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시화해 주는 환상의 매개이기 때문이다.

이런 형편은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의 극장가에는 우리 극장가와 마찬가지로 할리우드발 블록버스터들이 걸려 있다. 어딜 가나 눈에 띄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처럼 영화관에 걸린 간판도 똑같다.

하지만 예민한 취향은 결국 프랜차이즈 이상의 입맛을 요구한다. 그리고 김기덕 감독과 같은 예술적 작가들이 다루는 세계는 이 민감하고 예민한 차별성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공간들은 우리가 잊고 싶은 현실을 각성시키고 달콤한 위안을 거절한다. 대중이 김기덕 영화를 불편해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원초적 질문 꺼내는 투박한 힘

불편한 진실들은 외면한다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김기덕은 악취 나는 진실을 자꾸 끄집어낸다. 불편하지만 그 잔혹함을 목격하라고 자꾸만 권한다. 김기덕 영화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인간의 보편적 욕망 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응달이라고 할 수 있다.

‘피에타’ 역시 오이디푸스적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자본의 난폭함과 같은 사회적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그 연결은 거칠고 성기지만 질문만큼은 선명하다. 재개발을 앞둔 소규모 공장지대는 유럽의 뒷골목 풍경과 다르지 않고 잔인무도하지만 언제나 ‘엄마’를 그리워하는 남자는 모든 인간 속에 웅크리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기도 하다.

유럽이 사랑한 김기덕, 그는 그동안 문명의 이름으로 세련해 온 삶 속의 온갖 원초적 질문을 날것 그 자체로 다시 끄집어낸다. 유럽이 그에게 매혹되었다면 바로 진실을 꺼내는 투박한 힘 때문일 것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
#문화 칼럼#강유정#김기덕#베니스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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