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삼현]대기업총수 사면권 제한, 법치에 反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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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기업법률포럼 상임대표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기업법률포럼 상임대표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이 7월 12일과 16일, 앞다투어 경제사범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과 대통령 사면권 제한을 담은 입법안을 발의했다. 입법부가 소수의 대기업 총수에 대한 사법부와 대통령의 재량권을 통제하여, 사회적으로 보호해야 할 법익의 범위를 확대하고자 하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런 입법 움직임에 대해 몇 가지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일반 배임죄와 달리 경영자들에게만 주로 적용되도록 규정한 업무상 배임죄의 경우 경영 판단 행위를 두고 구성 요건 성립 여부를 따져야 하는데 그 특성상 명확한 판단이 어려워 늘 논란이 되어 왔다.

더욱이 업무상 배임죄는 형법상 일반 배임죄보다 2배나 형량이 높으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0억 원 이상의 이득을 취득한 것으로 추정되면 최대 무기징역으로 처벌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처벌 수위를 높이겠다고 하니, 기업들은 업무상 배임죄 공포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시시각각 경영상의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영인들은 향후 벌어질지 모를 업무상 배임죄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늘 방어적인 판단만 내릴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업무상 배임죄는 배임을 통해 얻게 되는 이익이나 피해 대상을 특정 짓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즉, 경영진에게 가중처벌을 할 목적으로 규정된 업무상 배임죄는 형사 벌로 보호해야 할 법익이 불분명하다는 점이 문제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업무상 배임에 관한 입법화에 신중을 기해 왔다. 현재 일본이나 독일 등 일부 대륙법계 국가를 제외한 그 어느 나라도 업무상 배임죄라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또한 업무상 배임죄의 적용도 독일은 해석상 다른 범죄로 처벌할 수 있을 만큼의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때만 해야 한다는 판례가 확고히 정립되어 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형법 제356조(업무상의 횡령과 배임)의 규정 이외에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제3조(특정재산범죄의 가중처벌)를 통해 배임액이 5억 원을 초과하면 가중처벌을 하도록 하고 있다.

즉 기업 경영자는 사적으로 이익을 취하려는 구체적인 의도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더라도 계열사의 손해 발생 위험의 정황만 있으면 최대 무기징역이나 최소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발생한 한화 김승연 회장 구속이다. 김 회장은 개인적인 이득이 없고 계열사 손해가 구체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업무상 배임 혐의로 법정 구속을 당했다. 경영상 필요에 의한 계열사 지원임에도 재벌 총수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에게 엄격한 처벌을 가한 것은 분명 우리 헌법 제11조 제1항에서 정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조항에 반하는 위헌의 소지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에 여야가 발의한 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면권 제한에 있다. 재벌 총수라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의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형평의 법리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법치주의에 반하는 위헌적 법률이 될 수 있다.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은 ‘무전 유죄, 유전 무죄’의 대표적 폐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행 배임 규정의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사법부의 형평 법리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할 때, 여야 모두가 업무상 배임에 대한 형량을 입법적으로 강화하려는 것은 법리적 측면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따라서 정치권은 혹시 이번 배임죄 규정의 개정으로 인해 전문경영인들의 과감한 투자 행위를 위축시킬 가능성은 없는지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기업법률포럼 상임대표
#기고#대기업 총수 사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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