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영식]오바마가 달라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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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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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국제부 차장
김영식 국제부 차장
그가 속된 말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8년 전이었다.

2004년 7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 찬조연사로 나선 42세의 버락 오바마는 정치 신인에 불과했다. 그는 흑인 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평등의 건국이념으로 돌아가자고 열변을 토했다. 그 순간 존 케리 민주당 대선후보를 위한 ‘쇼’는 오바마를 알리는 자리가 됐다.

그의 존재감은 4년 전인 2008년 콜로라도 주 덴버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점에 올랐다. 대선후보 오바마는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며 변화를 약속한 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됐다.

4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지난주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그는 “나는 단지 그냥 후보가 아니다. 내가 바로 대통령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경쟁자인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를 능가하는 연설이었지만 뭔가 ‘2%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8년 전, 4년 전과 달라진 것이 무엇이기에 그의 존재감이 줄었을까.

그동안 세계정세와 미국의 정치적 위상이 변했다. 중국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의 자리를 차지했다. 미국 경제는 어느 정도 안정됐지만 신용등급 하락의 수모도 겪었다. 반면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해 테러와의 전쟁에서 의미 있는 성과도 올렸다.

미국 내부의 변화도 있었다. 지난해 7월 국가부도 위기 사태, ‘99% 대 1%’ 논란까지 나온 빈부 격차, 부자 감세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 그런 가운데 지속된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결과 반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올 8월 말 공화당의 전당대회 첫날 오바마 인형 화형식을 벌이려다 허리케인 아이작 때문에 포기했을 정도다. 물론 이는 외부적 요인에 불과할 것이다.

아마도 오바마의 존재감을 줄어들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오바마 자신에게 있었을 것이다. 그건 바로 그가 실제로 대통령 업무를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으로서의 오바마의 고뇌는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사사건건 공화당과 충돌했지만 중산층을 살리기 위해 공화당의 정책도 일부 수용했다고 말했다. 특히 “최선의 결정을 위해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순간조차 제쳐둬야 하는 게 대통령 자리”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직의 무게와 타협의 의미를 알게 됐다는 얘기다.

롬니 후보는 일자리 1200만 개 창출을 공약했다. 오바마 대통령인들 일자리 2000만 개 창출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지만 대통령을 경험한 그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 대신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힘들지만 진실을 말하겠다”며 “힘든 길을 가자”고 설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꿈과 비전이 연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면서 오바마의 존재감이 약해졌을 수도 있다. 꿈과 현실의 숙명적인 반비례관계 때문일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정치인은 기저귀와 같다. 종종 같은 이유로 갈아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발전적으로 진화한 정치인까지 같은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정치인의 변화를 촉구하는 얘기라고 볼 수 있다.

단임제인 한국에선 대통령 경험자가 2기 정권의 구상을 밝히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도 대선후보들이 실현 가능한 공약으로 경쟁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유권자로서 지나친 요구는 아닐 것이다. 주요 대선후보의 공약을 알 수 없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나서서 실현 가능한 공약으로 경쟁하도록 돕는 정책공약은행까지 만들어야 하는 한국의 현실이 떠올라서 하는 얘기다.

김영식 국제부 차장 spear@donga.com
#오바마#롬니#미국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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