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현진]‘X대디’가 꿈꾸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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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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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산업부 기자
김현진 산업부 기자
필자가 대학에 입학한 1990년대 중반은 해외 문물에 대한 관심과 패션에 대한 실험정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때였다. 치렁치렁한 힙합바지가 땅에 끌릴까 봐 바지 밑단을 닥터마틴 신발 뒤축에 압정으로 고정시킨 ‘압구정 스타일’의 남학생들과 오피스레이디처럼 참한 정장차림에 프라다 배낭을 멘 ‘청담동 며느리 스타일’ 여학생들이 함께 캠퍼스를 누볐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율화 조치 이후 방학 때마다 배낭여행이며 해외연수를 떠나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이들은 서구 문물을 접하면서 패션뿐 아니라 삶의 목표, 사고방식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서구 문화의 직간접 영향을 받았다.

1990년대를 추억하는 디테일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X세대로 분류되는 1970년대생이라면 대부분 “확실히 ‘386’으로 불리던 전 세대와는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본보가 최근 이들 X세대로 아빠가 된 ‘X대디’가 한국 사회의 문화와 소비 지형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보도한 이후 주변 남성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87학번이라 개념적으로는 ‘X세대’에는 벗어나 있는 한 남성은 “가족 중심적이라는 점에서 나도 정서적으로는 ‘X대디’”라며 “저녁 시간이나 주말은 온전히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어 하는 문화가 회식이나 회사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 X대디가 주도하는 가치관의 변화가 자연스레 선배 계층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사가 실린 포털사이트 댓글과 SNS에서도 “내 이야기”라며 공감하는 반응이 많았다. 한편 “산업화 시대의 아빠들이 주말에 낮잠만 잔 것은 전쟁 후 폐허 위에서 맨주먹으로 가족과 나라를 먹여 살리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기에 주말에 쓰러져 재충전한 것. 이 아빠들의 희생 위에서 X대디의 여유가 생긴 것”이라는 댓글은 누리꾼들의 공감도가 가장 높았다. “현 세대 아빠들도 예전과 비교도 안 되는 경쟁 사회를 살고 있다”며 “(X대디가) 전 세대의 유물이라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라는 반박 글도 눈에 띄었다.

주변의 한 남성은 골프에 대한 태도를 놓고 X대디적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화창한 9월 주말, 필드에 나와 아무 거리낌 없이 골프를 즐기고 나서 식사까지 여유롭게 한다면 X대디가 아니고, 가족에 대한 죄책감으로 경기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직행한다면 X대디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부담감 때문에 아예 골프를 배우지 않는 남성도 X대디에 포함된다.

X대디가 개인적 취향을 즐기고 가정적인 성향을 띌 수 있는 것이 이들의 아내인 X맘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학창 시절 성적이나 사회적 능력 면에서 또래 남성을 능가해 온 ‘알파걸’이 대거 포진한 X맘 세대는 남편이 가사와 육아에 참여하는 평등한 부부생활을 당연시한다.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남편이 개인의 취미를 유지하는 것도 찬성한다. 취재를 위해 만났던 X대디의 파트너는 대부분 이런 X맘이었다.

X대디와 X맘은 조직이 아닌 가족지향적인 삶을 꿈꾼다. 이런 세대의 부각이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했는지, X대디 보도 이후 본보 취재를 도왔던 곳들에 정부 및 정치권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은 가족지향적인 구조라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X대디와 X맘이 현재 대한민국 경제와 사회의 핵심 계층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핵심 계층이 행복해야 나라 전체가 건강해진다. 정치권과 기업들의 관심과 배려를 통해 이들이 꿈꾸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사회적 여건이 성숙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현진 산업부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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