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용후핵연료 저장고, 재앙 덮치기 전에 지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4일 03시 00분


고리 영광 울진 월성 등 4개 원자력발전소 본부는 36만2000여 다발의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를 보관하고 있다. 1만 t이 넘는 규모다. 조만간 전체 저장용량의 70%를 넘어서고 2016년이면 포화 상태가 된다. 사용후핵연료는 방사선과 열이 급격히 방출되는 임계사고(臨界事故)의 가능성 때문에 중·저준위 폐기물보다 더 철저한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 원자력 전문가 23명으로 구성된 ‘사용후핵연료 정책포럼’이 2024년까지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고 설치를 건의하는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포럼 간사인 조성경 명지대 교수는 “중간저장고를 건설하는 데만 10년 정도 걸린다”며 “저장시설이 꽉 차는 4년 이내 완공이 불가능하므로 일단 각 원전의 보관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되 2024년 이전에 반드시 중간저장고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후쿠시마 원전의 폐연료봉은 일본 열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일본 당국은 폐연료봉을 쌓아둔 수조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바닷물을 퍼부어 엄청난 방사능 물질을 유출시키고 핵분열까지 우려되는 아찔한 상황을 자초했다. 각 원전이 직접 폐연료봉을 보관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안전한 중간저장고를 만들어 보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리하는 경주 방폐장의 건설에 착수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사용후핵연료의 중간저장고 건설에 대한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는 방폐장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안전한 건설계획과 충분한 재정 지원을 제시한다면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을 유도할 수도 있다.

중간저장고를 건설하더라도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대통령 특별위원회는 올해 1월 사용후핵연료를 100년간 중간 저장하되 혁신적인 최종 폐기법을 개발한다는 방안을 마련했다. 우리 정부는 2014년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기 위한 협상을 하면서 미국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허용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연소되지 않은 우라늄과 핵분열 과정에서 새로이 생성된 플루토늄을 함유하고 있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는 에너지 측면에서나 방사성폐기물의 안전관리 측면에서나 매우 중요하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이지만 1988년 재처리 권한을 확보했다.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투명하게 이용해온 한국이 재처리 권한을 갖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사설#혁연료 저장고#원자력#원자력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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