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구]울지마, 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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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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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사회부 차장
이진구 사회부 차장
그때 그는 울고 있었다.

흉악범을 애들 다루듯 하던 강력반 반장. 조폭 검거를 위해 출동하다 마주치면 “다녀와서 소주나 한잔해”라며 씩 웃던 베테랑 형사. 그런 그가 그날은 경찰서 현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

그는 그때 인사에서 다른 보직을 희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주말도, 명절도 그에게는 남의 일이었다. 시도 때도 없는 출동에, 살인사건이라도 터지면 수사본부에서 며칠 밤을 새워야 했다. 흉악범을 잡으러 나갈 때는 목숨도 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승진이라도 빨랐으면 위안이 됐을 텐데 순경 출신인 그는 나이 50에 경위가 고작이었다. 경찰대 간부후보생 출신도 아닌 데다 시험공부를 할 수 있는 다소 여유 있는 부서는 눈치 빠른 사람들 차지였다.

그날은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온 아들이 부대로 돌아가는 날이었다고 했다. 사건 때문에 며칠째 집에도 못 간 그는 점심에 경찰서로 찾아온 아들과 함께 밥을 먹은 게 고작이었다. 그때 마신 술 때문에 감정이 ‘울컥’했던 것 같다.

취재수첩에도 적어놓지 않았던 10여 년 전 일이 새삼 떠오르는 것은 최근 어처구니없는 강력범죄가 계속되면서 속된 말로 ‘닦달’ 당하고 있을 형사들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일이 터지면 언론과 국민은 치안 부재를 질타한다. 뒤질세라 수뇌부는 책임자를 처벌하고, 전담반 구성 등 온갖 대책을 내놓는다. 그것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경찰 안에서 ‘형사’가 어떤 위상인지 알면 그런 질책과 대책이 얼마나 공허한지 쉽게 알 수 있다.

형사가 멋진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영화나 드라마 때문인 것 같다. 정보과, 공보과 경찰관이 주인공인 영화는 없으니까.

하지만 실제 경찰 내에서 형사가 기피 보직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개인 생활도, 승진도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혜택을 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경찰에서 인기 부서는 승진이 빠르거나 보장된 공보 정보 감사, 비교적 험하지 않고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외사나 돈과 관련된 경무 같은 분야다. ‘형사’는 일도 힘든 데다 승진 자리도 적고, 자칫하면 구설에 오르기도 쉬워 소위 똑똑한 경찰관은 잘 지원하지 않는다. 일부 개선이 있었다지만 이런 현실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구성원의 마음이 이런데 아무리 강력범죄 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들 ‘땜질’ 외에 다른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정부 당국자와 국민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증원을 요청하면 언제나 ‘공무원 정원’이라는 여론과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다. 텅 빈 공항과 고속도로는 인프라라고 생각하면서 치안이 ‘인프라’라는 생각은 덜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치안이 보장되지 않아도 경호원을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은 걱정이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부자나 권력자뿐이다. 치안은 스스로 신변안전을 확보할 수단이 없는 일반 시민의 안전까지 보장해주는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자녀의 안전을 걱정해 밤늦게 학원 앞에 부모들의 승용차가 줄을 서는 것은 이미 낯익은 풍경이다. 우리 가게에 더 자주 오는 것은 경찰차가 아니라 사설 경비회사 순찰차다.

경호원을 고용하고 사설 경비업체와 계약을 맺는 시민이 늘고 있다면 이는 국가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형사가 기피 보직이 된 경찰도 제 기능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진구 사회부 차장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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