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이영작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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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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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처조카였던 이영작(70·전 한양대 석좌교수)은 1997년 대선 때 DJ 승리 전략을 짠 1급 참모였다. 그는 치밀한 설문을 통해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는 여론조사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었다. 미국에 있을 때 보건의료 통계분야에서만 20년 넘게 쌓은 현장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 이영작은 “1997년 대선 때에는 설문 작성에만 석 달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DJ는 준비된 대통령’이란 히트상품은 그가 1년 넘게 다듬어온 비장의 무기였다.

이영작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인제를 밀었다가 실패했다. 이인제의 요청도 있었지만 노무현보다 이인제가 경선과 본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영작은 “이인제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고 경선 패인을 해명했으나 이인제 지지는 그의 경력에서 ‘실패의 오점(汚點)’으로 남았다. 이영작은 그해 대선에서 손을 뗐다. 노무현 캠프가 이인제를 지지한 그를 받아줄 리도 없었다.

그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조심스럽게 복귀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김진홍을 통해 이명박 캠프에 합류한 것이다. 이영작은 가급적 대외 노출을 꺼린 채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만든 메시지 전략을 이명박과 제한된 핵심 인사들에게만 보고했다. 이명박은 모든 일정을 소화한 뒤 밤늦게라도 이영작에게서 보고를 받았다. 이영작은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캠프가 숨겨 놓은 ‘비밀병기’였던 셈이다.

당시 이명박 캠프에는 선거 전략과 관련한 재사(才士)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지만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출신 전략통 대신에 한때 반대 진영에 속했던 전략가가 ‘이너서클’에 합류한 것은 파격적이었다. 이명박은 종종 사석에서 “큰 선거에서 이겨본 사람의 분석과 전망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한때 반대 진영 정당의 대선 후보(이명박)를 도운 일에 대한 오해를 의식한 듯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나는 국민대통합과 관련한 정치적 역할을 할 능력이나 생각도 없다. 여론조사 전문가니까 조사를 해줄 용의는 있다고 했다. 최근까지도 새누리당 쪽에선 강연 요청 등이 적지 않았지만 민주통합당 쪽에선 그런 제안이 일절 없었다.”

최근 새누리당에서 박근혜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이영작은 국민대통합을 위한 외부 영입대상으로 거론됐다. 이영작은 “구체적인 접촉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민주당에선 핵심 인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할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대통합을 명분으로 민주당 쪽 인사들을 끌어들이려는 새누리당이나, 이에 발끈하는 민주당이나 모두 정치적으로 ‘내 편, 네 편’만 따지는 진영(陣營) 논리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현재 여야 특정 캠프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선거 여론조사 전문가답게 대선 정국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그는 박근혜가 경제민주화를 주창하고,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에 찬성하면서 여야의 큰 정책 쟁점은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결국 현재 대선 구도를 양분하는 박근혜와 안철수 등 ‘빅2’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승부를 가르는 열쇠가 될 것으로 봤다.

“박근혜는 본인은 몰라도 주변을 에워싼 세력이 과연 부정부패와 깨끗하게 단절할 수 있을지 국민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안철수는 국정운영 능력이 전혀 없어 대통령이 되면 불안할 것이라는 점이 최대의 약점일 것이다. 박근혜와 안철수는 각자 높은 산을 넘어야 한다.”

4개월도 남지 않았지만 대선 구도는 여전히 유동적이다. 이영작의 앞으로의 선택도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오늘과 내일#정연욱#이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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