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중현]‘금’이 ‘은’보다 흔해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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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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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경제부 차장
박중현 경제부 차장
숫자는 때로 웅변보다 많은 걸 알려준다. 통계 숫자의 행간을 읽는 경제기자의 버릇 탓에 런던 올림픽 국가별 메달 수를 들여다보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이나 은메달을 1개 이상 따낸 74개 국가 가운데 금이 은보다 많은 나라는 24개국이었다. 반면 은이 금보다 많거나 같은 나라는 50개국으로 갑절 이상이다.

금메달을 기준으로 한 순위로 1위인 미국(금 46, 은 29, 동 29), 2위 중국(38, 27, 22), 3위 영국(29, 17, 19)은 금이 은보다 많았다. 5위인 한국(13, 8, 7)을 비롯해 헝가리(8, 4, 5) 카자흐스탄(7, 1, 5) 우크라이나(6, 5, 9) 쿠바(5, 3, 6) 뉴질랜드(5, 3, 5) 체코(4, 3, 3) 북한(4, 0, 2) 등도 마찬가지여서 20위 안의 나라 중 11개국이 은보다 금을 많이 땄다.

이 중 중국 헝가리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쿠바 체코 북한 등 7개국은 공산주의 진영이었거나 현재 공산주의 국가라는 게 공통점이다. 영국 뉴질랜드 미국 등 3개국은 영연방 국가이거나 영국 식민지였던 나라다. 두 범주에 속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은보다 금이 많은 나라를 관통하는 요소는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경제학 명제다. 구(舊) 공산권 국가들은 국가 주도 엘리트 체육이 강할 뿐 아니라 공산체제 때부터 신분 상승의 주요 채널로 스포츠가 자리를 잡은 나라들이다. 중국 북한 쿠바의 경우 금메달 획득은 밑바닥에서 국가영웅으로 떠오를 극히 드문 기회이자 인센티브다.

미국 영국 뉴질랜드는 모두 앵글로색슨계로 자유주의 경향이 강한 국가다. 특히 미국과 영국은 정상급 스포츠 스타나 기업인에게 파격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같은 선진국이지만 평등주의 성향이 강한 유럽 대륙의 복지국가로 6, 7, 8위를 차지한 독일(11, 19, 14) 프랑스(11, 11, 12) 이탈리아(8, 9, 11)와 11위 일본(7, 14, 17)은 은이 금보다 많거나 같았다.

한국은 두말할 것 없이 메달 색깔이 중요한 나라다. 순위에 상관없이 박수 치는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은메달을 따고도 여전히 억울해한다. 메달 색깔에 따른 경제적, 사회적 보상의 차이가 심대하기 때문이다.

‘당근과 채찍’으로 표현되는 인센티브의 힘이 승부에 미치는 영향을 여실히 보여준 경기가 축구 3, 4위 한일전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숙명의 라이벌에 대한 필승의 기백과 함께 경제적 보상보다 더 중요한 병역특례 인센티브를 걸고 경기에 나가 멋진 승리를 거뒀다.

올림픽에 묻혔지만 한국의 대표기업들은 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 올림픽 금메달에 버금가는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 자리를 굳혔고, 현대·기아차는 올 상반기 세계 자동차 시장의 침체 속에서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올렸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을 쌍수 들어 환영하는 여야 정치권은 대기업에 대해선 정반대 태도다. ‘경제민주화’란 명분으로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온 인센티브 없애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결국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법이다. 한국 경제의 얇은 선수층을 두껍게 하기 위해 은메달 동메달급인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이를 위해 대기업을 온갖 규제로 묶어서 금메달을 못 따게 하는 건 난센스다. 국민들이 바라는 게 경제올림픽 금메달을 없애자는 것일까. 정치권은 이 점을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박중현 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
#뉴스룸#박중현#올림픽#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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