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소셜미디어 시대의 생각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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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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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미국이 건국된 18세기 후반,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로 편지를 보내는 데 두 달 남짓 걸렸다. 마차와 정기우편선을 타고 프랑스 서부의 항구 르아브르를 거쳐 파리까지 거의 5000km에 이르는 거리다. 편지를 보내고 답신을 받으려면 족히 넉 달은 기다려야 한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4대 대통령)은 수정헌법(권리장전)의 초안을 놓고 당시 프랑스 주재 공사인 토머스 제퍼슨(3대 대통령)과 이런 식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토론했다.

편지를 주고받는 시간이 길수록 생각하는 시간도 길어지는 것일까. 미국의 헌법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헌법으로 꼽힌다. 1787년 제정된 뒤 지금까지 27개 조항이 추가됐을 뿐이다. 매디슨과 제퍼슨 같은 정치인들의 진지하고 치열한 토론이 건국한 지 채 300년도 되지 않은 나라의 헌법이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도록 만든 것이다.

생각은 어떤 미디어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 품질이 달라질까? 생각은 어떤 미디어로 확산시키느냐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질까? 자신의 생각을 편지나 책의 형태로 표현하고 전달하던 시대와 e메일이나 트위터로 표현하고 확산시키는 시대는 사고(思考)의 무게가 달라 보인다. 즉문즉답하는 리얼타임(Real Time) 미디어에서 생각의 무게가 ‘0’에 수렴한다면, 매디슨과 제퍼슨의 편지는 두 달 동안 지구 반 바퀴씩 돌면서 사색을 통해 생각의 무게가 늘어나게 되는 것일까?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정신 활동인 생각에도 뉴턴의 제2법칙(가속도의 법칙. F=ma)이 적용되는 것 같다. 물체를 움직이는 힘(F)은 질량(m)과 가속도(a)의 곱으로 결정된다. 곧, 생각의 질량(m)이 일정하다고 가정하면 생각의 영향력(F)은 생각의 확산가속도(a)에 비례한다. 따라서 생각을 방송, 포털, 페이스북, 트위터처럼 확산가속도가 매우 높은 미디어에 실어 보낼수록 그 영향력이 커진다는 결론이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대선 주자들이 영향력이 큰 소셜미디어를 놓칠 리 없다. 자신을 소개하는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만들어 놓고 ○사모, △△사랑, □□서포터스 같은 친위 조직을 앞세워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지지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당연한 전략이다. 자신의 정치 비전을 담은 서적을 출판하는 것은 대중과 소통하기보다는 출판기념회에서 후원금을 모으기 위한 전략일 뿐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정반대의 전략을 택하고 있다. 정보기술의 전도사로 꼽히는 그가 대선 출마를 고민하면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는커녕 휴대전화도 싫어한다. 오히려 ‘안철수의 생각’을 발간하면서 후원금을 모으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경쟁자들이 여론의 광장에서 생각의 확산속도를 높이는 데 여념이 없는데, 안철수 원장은 아직도 실험실에서 생각의 질량을 재는 데 골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셜미디어는 스마트폰과 결합하면서 기존의 인터넷미디어와 비교해도 정보의 확산속도가 차원이 다르다고 할 만큼 빠르다. 빌 게이츠가 1999년 ‘생각의 속도’를 발표한 뒤 생각의 속도가 빛의 속도만큼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소셜미디어로 자신의 생각을 확산시킬 수 있는 만큼, 이제 생각의 속도는 차별성을 갖는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생각의 무게를 늘리는 것이 승부의 관건이 될 것이다. 광장에서 생각을 풀어놓지만 말고 실험실에서 생각을 저울질하지만 말고, 매디슨과 제퍼슨처럼 사색과 토론을 통해 생각의 무게를 높여야 한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광화문에서#허도영#소셜미디어#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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