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공짜니까 던져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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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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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국민이 5년마다 듣는 말이 있다. 대통령 선거철만 되면 여야 후보들이 너나없이 외치는 ‘입시 단순화’다. 모두들 대학 입시를 간소화하고, 고등학교 체제를 개편해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약속한다.

요즘 이런 말이 자주 들린다. 대선이 다가오는 게 실감난다.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17일 수시모집은 학교생활기록부, 정시모집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로 바꿔 입시를 단순화하겠다고 밝혔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은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를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교육공약을 밝힌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입시를 내신 위주로 바꾸고 특목고와 입학사정관제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일가친척 중에 학생 한 명쯤 없는 집이 없다 보니 입시는 전 국민의 관심사다. 입시 관련 공약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대선이 아직 한참 남은 시점부터 유독 입시 공약이 단골로 등장하는 속사정은 따로 있다고 봐야 한다. 복지, 일자리, 국토개발 등 다른 공약과는 다른 ‘은밀한 매력(?)’이 있다는 얘기다.

입시 공약의 매력은 예를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일자리를 몇만 개 만들거나 지역균형 발전을 하겠다고 약속하려면 막대한 재정 계획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내놓으면서 건설비용으로 15조 원이 필요할 거라 했듯이.

반면 논술 고사를 폐지하거나 외국어고를 없애겠다는 약속에는 돈이 필요 없다. 정책연구를 거쳐서 법령만 바꾸면 된다. 이 대통령은 사교육비 절반 공약으로 대입 3단계 자율화 계획을 내놓았을 때 관련 예산을 언급하지 않았다. 돈은 안 드는데 관심을 끄는 데는 최고니 어찌 입시 공약이 매력적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은 입시 공약이 현장에 미치는 혼란은 생각보다 크다. 올해 초 당시 한나라당에서 입시를 수능 위주로 단순화하겠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수능 관련 인터넷 강의 업체의 주가가 급등했을 정도로 현장은 민감하다. 서울 강남의 모 사설학원은 발 빠르게 학부모 설명회에서 이 소식을 전하면서 “수능에 더 투자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학부모는 이런저런 입시 공약을 들을 때마다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수능 인터넷 강의를 더 듣게 해야 하나, 내신 학원에 더 보내야 하나, 특목고 준비를 포기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해진다.

주부 포털사이트나 학부모 대상 인터넷사이트에는 대선 주자의 교육 공약이 주르륵 뜨고 있다. 상반기에 죽을 쒔다던 대입학원 관계자는 “입시 얘기가 슬슬 나오면 학원 경기가 금방 좋아질 테니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교육 업계에는 선거가 사교육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다. 하나의 입시안이 3, 4년쯤 이어져 예측가능성이 생길 만하면 선거 공약에 따라 뒤집어지니까 새로운 사교육 수요가 살아난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일선 학교에서 “최악의 입시라도 안 건드리는 게 최선”이라고 얘기할까.

세부 방안도 없고, 정책 결과에 대한 검토도 없이 원론적으로 던지는 입시 공약은 교육 현장에 큰 부작용을 끼친다. 후보들이 관심을 끌기 위해 설익은 입시 공약을 던지면 학부모와 학생의 불안감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무심히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좋은 대통령이 되겠다면 입시 공약을 내놓는 데 좀 더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대선#입시 단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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