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원홍]박지성과 조이 바턴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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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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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홍 스포츠레저부 차장
이원홍 스포츠레저부 차장
그곳엔 악당으로 불리는 사나이가 있다. 파티 장소에서 불붙은 담배로 다른 선수의 눈을 찌르는가 하면, 훈련 도중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팀 동료를 두들겨 패 병원으로 보내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싸움을 벌이는 것은 다반사였다. 행인과 시비가 붙어 여러 차례 강펀치를 날려 기절시켰고 나이트클럽 앞에서 난동을 벌이다 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다.

팬들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자신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어린 소년을 향해 돌진하기도 했다. 이런 행동 때문에 약 3개월간 감옥에 갔다 오기도 했고 여러 차례 쫓겨나 팀을 옮겨 다녔다. ‘방랑하는 폭력배’로도 불리는 그의 이름은 ‘퀸스파크 지역의 특공대’라는 뜻을 지닌 잉글랜드 축구단 퀸스파크 레인저스(QPR)의 조이 바턴이다.

바턴은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팀 맨체스터 시티의 슈퍼스타들을 팔꿈치와 무릎으로 가격해 12경기 출장 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구단은 그에게서 주장 완장을 빼앗았다.

여기서 바턴의 운명과 박지성의 운명이 만난다. QPR는 이후 정성을 다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뛰고 있던 박지성을 영입했다. 마크 휴스 QPR 감독은 “박지성이 관심이 있다면 그에게 주장을 맡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지성과 바턴의 포지션은 미드필더로 똑같다. 성향은 극과 극이다. 바턴이 공격적인 반면 박지성은 헌신적이다. 박지성의 맨유 동료였던 리오 퍼디낸드는 박지성을 떠나보내며 “그는 위대한 하인(servant)이었다. 언제나 동료를 위해 뛰었다”고 말했다.

퍼디낸드가 말한 ‘하인’이라는 표현은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거북하다. 유럽인의 우월의식이 반영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의 ‘하인’이라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 신분이나 계급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을 표현한 것이라 보고 싶다.

주어진 일만을 기계적으로 처리한다면 창의성과 효율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지나치게 수동적인 태도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창의적인 성실성이 필요하다. 이를 이끌어내는 것은 열정이다. 열정에 넘치는 성실성이야말로 박지성이 그토록 사랑받아온 이유다. 그는 열정과 성실성을 최후이자 유일한 무기로 삼고 있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영웅이 되었다.

그렇다면 바턴은 무조건 악당인가. 그는 어릴 때 가족과 헤어져 고독한 성장기를 보냈다. 그의 과격한 행동은 상처 받은 내면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행동들이 극단적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바턴은 이런 자신을 바꾸기 위해 철학책을 읽기 시작했고 영국 작가 조지 오웰과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등을 자주 인용한다. 언론에서 외면 받자 직접 트위터를 통해 팬들 앞에 나섰다. 그의 팔로어는 현재 160만 명을 넘는다. ‘철학하는 깡패’라는 비아냥거림도 받지만 바턴 역시 자신을 개혁하기 위해 필사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두 영혼이 그라운드에서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장기 징계를 받은 바턴이 징계 기간 중에 다른 팀으로 단기 임대될 가능성이 있지만 다른 팀으로 방출되지만 않는다면 시즌 중후반에는 만날 것으로 보인다. 바턴은 최근 트위터를 통해 “박지성 환영한다. 우리를 위해 훌륭한 영입이다”고 했다.

거친 바턴이 깊은 사색으로 자신을 가다듬고 나서길 기대한다. 박지성의 헌신적인 열정이 그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스타일이 다른 격렬한 두 개의 심장이 만나 새로운 기적을 만드는 것을 보고 싶다. 그라운드에서는 축구공뿐만 아니라 영혼도 진화한다는 것을 보고 싶다.

이원홍 스포츠레저부 차장 bluesky@donga.com
#박지성#조이 바턴#Q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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