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인규]‘철수’는 초등학교를 졸업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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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경제학
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경제학
‘철수’는 정겨운 이름이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 1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는 ‘바둑이와 철수’로 시작했다. 철수는 다정한 친구이자 우리가 본받아야 할 ‘품행이 방정(方正)’한 모범생이었다. 내가 졸업한 뒤에도 철수는 내 후배들과 함께 여전히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랬던 철수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0여 년 전 우연히 초등학교 교과서를 훑어보다 철수 자리에 ‘기영’이가 들어온 걸 발견했다. 철수는 그 후 어떻게 자랐을까? 그 궁금증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보고서야 비로소 풀렸다. ‘철수’의 성이 안씨였던 모양이다.

안 교수의 반듯한 이미지와 도전 정신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는 안정적인 의사로서의 삶을 마다하고 힘든 ‘컴퓨터 의사’의 길을 택했다. 안철수연구소로 성공했을 때도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귀국해서는 대학교수로 변신해 우리 젊은이들의 멘토가 됐다. 그의 ‘청춘콘서트’에 이 땅의 ‘아픈 청춘들’이 환호했다. 자기 재산의 절반인 1500억 원 상당을 사회에 환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진 자의 책무)를 몸소 실천했다. 이 모두가 품행이 방정한 ‘철수’였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도덕군자는 유능한 정치가 못돼

그런 안 교수가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정치판에 한 발을 담근 채 대선 출마를 놓고 장고(長考) 중이다. 장고가 너무 길어지다 보니 그에게 호감을 가졌던 국민조차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반(半)정치인으로서의 안 교수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선거는 전통적으로 여야의 대선 주자 두 명이 격돌하는 복점(複占·duopoly) 구조였다. 하지만 안 교수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2012 대선 레이스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안 교수의 등장은 이런 독점시장을 ‘경합 가능(contestable) 시장’으로 만들었다. 경합 가능 시장이란 겉보기에는 경쟁이 없는 독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잠재적 경쟁자가 도사리고 있어 시장이 경쟁적이 되는 것을 일컫는 경제학 용어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잠재적 경쟁자로서 안 교수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평온하던 박근혜 후보의 독점체제에 태풍을 몰고 왔다. 안 교수는 ‘경제는 진보(좌파), 안보는 보수(우파)’라고 자신을 정의했다. 그는 새누리당의 경제 관련 ‘좌(左)클릭’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좌클릭이란 우파 정당이 ‘경제민주화’와 같은 좌파 정책을 수용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안 교수의 안보관은 보수가 아니다. 애국가마저 부정하는 종북(從北)좌파가 국회까지 진출한 마당에 그는 “대한민국에 빨갱이가 어디 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래도 안 교수는 지금껏 잠재적 경쟁자의 역할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그런 그가 앞으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자신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이제 정치판에서 발을 뺄 때가 됐다.

경합 가능 시장의 잠재적 경쟁자는 기존의 독점자가 효율적으로 행동하는 한 ‘칼집의 칼’ 상태를 유지한다. 왜냐하면 칼을 뽑는 순간 효율적 독점자의 더 무서운 칼이 날아오기 때문이다. 10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박근혜 경선 후보는 더는 예전의 독점자가 아니다. 게다가 민주통합당의 대선 주자들도 안 교수 덕분에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춰가며 그가 누렸던 정치적 지위를 빠르게 대체해 가고 있다.

안 교수의 대선 참여는 국민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까? 아니라고 본다. 그에게는 ‘불편한 진실’이겠지만 도덕군자(道德君子)는 유능한 정치지도자가 되기 어렵다. 우리나라와 같은 준(準)전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치가 아니라면 안 교수는 무엇으로 ‘사회발전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타계 후 우리나라에서 ‘구루(guru·신성한 교육자)’라 불릴 만한 분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나는 안 교수가 청춘의 멘토를 넘어 세속의 구루가 될 자질을 지녔다고 본다.

안 교수, 존경받는 교육자로 남길

또한 학자로서의 안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만한 능력을 지녔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극복을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그의 주장만 봐도 그렇다. ‘이익공유제’나 ‘복지’를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사람들에 비해 본질을 꿰뚫는 혜안이 있음을 보여준다.

구루이면서 한국 자본주의의 새 패러다임을 설계할 만한 인물로는 안 교수만 한 사람이 없다. 대통령 자리는 정치가에게 맡기고 안 교수는 이 꿈을 위한 도전에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그가 즐겨 말하는 ‘상식’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 상식으로 품행이 방정한 ‘철수의 길’을 모색해보라.

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경제학 igkim@hallym.ac.kr
#동아광장#김인규#안철수#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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