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태현]차기 대통령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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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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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중앙대 교수·국가대전략연구소장
김태현 중앙대 교수·국가대전략연구소장
선거의 해다. 국민의 관심은 향후 5년 동안 나라를 이끌 대통령 선거에 집중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을까. 유권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지지 후보를 선택해야 할까. 성공한 기업인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지 않을까, 명망 높은 학자라면 나라의 품격을 높이지 않을까, 대쪽 같은 법조인이라면 공정한 사회를 만들지 않을까, 촌철살인의 언론인이라면 구석구석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 않을까, 인기 있는 연예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삶을 신명 나게 만들지 않을까. 또 평생 정치를 업으로 해온 정치인이라면 어떤 나라를 만들까.

사실 국회의원을 필두로 정치인이란 직업은 요즘 들어 국민으로부터 존경이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직업이 됐다. 그런 직업을 위해 목을 매니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권력욕의 화신처럼 비치고 그럴수록 국민으로부터 더욱 신망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차기 대통령이 정치인 중에서 나오길 바란다. 그것은 정치인으로서의 훈련과 경험이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직무는 무엇이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타협과 절충 통해 공동체 유지해야

첫째,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많은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국가사회다. 그 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같을 리 없으니 그들 사이에 이익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여러 사람의 이익을 절충하고 갈등을 조정하여 국가사회의 일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정치의 근본적 역할이다. 따라서 정치의 핵심은 타협이다. 이익의 갈등이 있는데 타협이 없으면 전쟁 상태와 다름없다. 총칼을 겨누는 것만 전쟁이 아니라 이념적으로 경직되고 정당을 포함한 정치조직이 서로를 선과 악으로 나누어 대결하는 상황도 전쟁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정치란 타협과 절충의 영역이고 그 일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 바로 정치인이다. 3당 통합, DJP 연합, 노무현-정몽준 연대와 같이 ‘불가능한’ 연합을 이루는 게 정치다. 물론 배신도 쉽게 한다.

둘째, 대통령은 권력자다. 권력이란 무수한 사람을 죽이거나 살리고 울거나 웃게 할 수 있는 힘이다. 국민의 무한한 존경을 받을 수도 있고 국민을 공포에 떨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권력자가 자주 걸리는 병이 있다. 바로 오만, 그리스어에서 온 ‘휴브리스(hubris)’가 그것이다. 자신이 특별나다고 생각하여 타락하고 부패하게 되는 ‘권력의 병’이다.

쥐꼬리만 한 권력을 가지고도 걸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권력의 병인데 하물며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병은 감기처럼 면역효과가 오래가지 않는 것이지만 그나마 면역이 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정치인이다. 권력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그 생리를 잘 알며, 그 무상함도 뼈저린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셋째,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국가 지도자다. 때로, 자주 나라의 명운을 건 큰 결단을 해야 한다. 가느다란 실에 매달린 날카로운 칼, 곧 고대 그리스 설화 속의 ‘다모클레스의 칼’을 머리에 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국가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지역 내 상대적 약소국이자 북한의 군사적 도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지도자는 더욱 그렇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결단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결단을 내린 경험, 그것도 자주 내린 경험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 결단의 순간에 심장이 떨리고 손이 후들거리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정치가 그런 것이고 정치인이 그런 사람이다. 평생 살얼음판을 걸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때로는 비굴하고 때로는 야비하며 때로는 무모한 것 같은 사람이 정치인이다. 그 보기 싫은 것들이 오히려 장점이 되는 것이 정치이고 대통령의 직무이다.

대통령은 복잡한 현대사회의 온갖 이해관계 속에서 타협과 절충을 통해 공동체를 유지해야 한다. 스스로 권력을 제어해 오만해지거나 부패하지 말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과단성 있는 결단을 내리고, 무엇보다 나라 밖의 적을 상대했을 때 떨지 않고 제압할 수 있는 강단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은 ‘직업 정치인’ 중에서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좋은 정치인은 지옥을 피하게 하는 것”

서양의 성인 플라톤은 철학자 왕의 통치를 꿈꾸었다. 동양의 성인 맹자는 어진 임금의 덕치를 꿈꾸었다. 필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세종대왕과 같은 성군의 치세를 바라지 않겠는가. 그러나 꿈은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지향점을 제공하는 이상일 뿐 현실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다그 함마르셸드는 “유엔의 역할은 인류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옥을 피하게 하는 데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도 그렇다. 정치의 역할은 우리를 지상의 낙원으로 인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옥을 면하게 하는 데 있다. 정치에서 덕목은 최선을 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데 있다. 대통령을 뽑는 유권자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국가대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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