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핵의 군사적 이용 길 닦는 일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2일 03시 00분


일본이 원자력 관련법에 ‘원자력 이용의 안전 확보는 국가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한다’는 항목을 추가해 핵무장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원자력의 군사 전용은 없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일본 내에서조차 법적으로 핵무장의 길을 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 중국의 군사대국화 등에 편승해 핵의 군사적 이용을 추진하면 세계 안보환경은 격랑에 휩싸일 것이다.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가 세계 유일의 핵폭격 피해국이 된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1947년 이른바 평화헌법 9조에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금지 원칙’을 천명했다. 1968년에는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보유하지 않으며, 도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화 3원칙을 내놓았다. 일본이 세계 3위의 원자력발전 대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국제사회가 일본의 비핵화 약속을 믿고 핵무기 비보유국 중 유일하게 핵 재처리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전쟁범죄 국가인 일본의 원자력 관련법 개정은 국제사회의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일본은 이미 30t가량의 플루토늄과 1200∼1400kg의 고농축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1만∼1만5000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 일본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로켓도 보유해 핵을 장착한 장거리 미사일을 만들 능력을 갖췄다. 이번 법 개정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는 괜한 것이 아니다.

북한이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나오자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는 최근 한반도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내에서도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이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는 등 북한 핵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반대하고 있고 한국 정부의 비핵 정책에도 변함이 없다. 일본의 핵 정책 변화는 법 개정으로 실현된 것이어서 자칫하면 핵 개발 도미노를 불러올 수 있다.

핵 비확산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일본의 수상한 움직임을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역시 정부 차원의 공식 대응을 자제하고 있지만 일본의 의도를 불순하게 판단할 게 분명하다. 일본이 핵의 군사적 이용 가능성을 불식하지 않으면 국제사회는 북한과 이란에 핵개발을 중단하라고 촉구할 명분을 잃을 수도 있다. 일본이 원자력을 계속 평화적으로만 이용할 생각이라면 외부에 구구하게 변명하는 대신 법 개정을 철회하는 것이 옳다.
#핵#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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