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소비 더 얼어붙으면 경제도 민생도 시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9일 03시 00분


요즘 일부 고급 일식당이 손님의 발걸음이 줄어들자 중저가형 횟집으로 바꾸거나 회에 곁들여 나오는 음식을 줄이고 가격을 낮춘 메뉴를 내놓는다. 주요 백화점들은 재고 처리를 위해 대폭 세일 행사를 마친 뒤 29일부터 시작되는 7월 정기세일 기간을 늘려 잡을 계획이다. 중상층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하면서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때도 끄떡없었던 외국제 명품 매출도 줄어들었다.

과거에 경제성장률을 능가했던 민간소비 증가율은 외환위기와 2008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15년 사이에 두 번이나 계단식으로 하락했다. 최근 경기 위축 속에서도 일자리 수는 늘어나지만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아 소비로 이어지지 못한다. 전년 대비 일자리 창출이 2010년에 32만 개, 2011년에 42만 개나 됐지만 주당 36시간 이상의 일자리는 오히려 19만 개, 92만 개가 줄었다. 유럽 재정위기의 확산 우려로 증권 등 금융자산도 불안정해 소비 부진을 부채질했다.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플러스였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9개 회원국 가운데 민간소비가 감소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가계부채가 크게 늘고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성장이 둔화해 소비 부진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외국발(發) 경기침체 탓에 소비가 갑자기 줄었다면 다소 시간이 지나 원상회복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지만 지금의 소비 부진은 일시적 상황이 아닌 것 같아 우려가 크다. 민간소비가 계속 위축된다면 과도하게 수출에 치우친 불안한 경제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구조적인 장기불황에 빠졌다. 위축된 민간소비가 기업의 투자심리를 떨어뜨리고 이것이 다시 경기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정부가 소비 보조금을 지급해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저축을 하다 보니 민간소비를 통한 경기부양의 효과가 미흡했다.

장기불황의 위험을 줄이려면 가계의 소비 여력을 늘리기 위한 맞춤식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민간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소득, 물가, 금융자산, 이자비용 순이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중요하다. 일자리 창출 목표수치도 채워야겠지만 서비스업 생산성 향상을 통해 질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려면 행정규제를 대대적으로 혁파하고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 가계부채 연착륙 및 부동산 거래 회복 등 미시적 대책도 시장 친화형으로 손질해야만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사설#경제#소비#소비 위축#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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