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노무현 3주기, 친노가 ‘새 역사의 주역’ 될 수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3일 03시 00분


오늘은 비극으로 삶을 마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3주기다. ‘노무현의 친구’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19일 “3주기를 마치면 탈상(脫喪)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권에서 ‘노무현 정치’는 현재진행형이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어제 당 대표 경선 광주·전남 합동연설회에서 “광주 전남은 김대중 노무현을 선택한 곳이다. 다시 한번 뭉쳐서 제2의 김대중 노무현을 탄생시키자”라고 역설했다.

친노(親盧)는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530만 표 차로 패한 뒤 스스로 ‘폐족(廢族)’이라고 불렀다. 폐족은 나라에 큰 죄를 지은 조상으로 인해 그 후손들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가문을 뜻한다. 친노는 상당 기간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없게 됐음을 자탄(自嘆)한 것이다. 하지만 3년 전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하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기득권 세력에 의해 타살된’ 억울한 죽음으로 몰고 갔다. 친노는 정치적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2010년 6·2 시도지사 선거에서 안희정 이광재 김두관 씨 등 친노 세력이 대거 당선됐다. 작년 말 이해찬 문재인 등 친노 세력은 민주통합당 창당을 주도했고, 한명숙 대표 체제를 띄워 당 장악에도 성공했다. 이와 함께 폐족을 자처했던 자기반성도 사라졌다.

친노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 백지화에 앞장섰다. 노 정부에서 대통령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씨는 “당시 진보 진영의 강한 반대를 뚫고 한미 FTA를 추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적 현실과 역사적 방향에 대해 큰 고민 없이 폐기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야권연대 파트너인 통합진보당의 비위를 맞추느라 노 전 대통령의 유업(遺業)을 스스로 짓밟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노 전 대통령이 추구한 가치와 원칙을 내팽개치고 세력 연합이라는 정치공학에 골몰한 것이다.

당 대표 경선을 앞두고 당내 양대 세력인 친노와 호남 세력은 밀실담합 카드를 꺼내며 ‘단합’이라고 강변했다. 담합은 이권을 나눠먹기 위해 강자가 뭉치는 것이지만 단합은 강자에 맞서기 위해 약자끼리 손을 잡는 일이다. 친노의 정치적 역량이 국민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기보다는 실망만 안겨주면서 친노가 득세할수록 정권교체는 멀어져간다는 당내 비판도 나온다.

친노는 4·11총선에서 패배하고도 ‘사실상 승리했다’는 잘못된 상황 인식을 드러냈다. 민심은 친노가 이끄는 민주당에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친노는 자기 쇄신과 진화 없이는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없다.
#노무현#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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