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양환]‘사운드 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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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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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환 국제부 기자
정양환 국제부 기자
최근 대만의 행정원 신문국 초청으로 대만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10여 개 해외 언론매체의 기자들과 현지를 둘러보며 다양한 의견을 나눈 값진 시간이었다.

타이베이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마음속엔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한류(韓流)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대만은 한류 인기지역으로 꼽히기에 더 관심이 갔다. 요즘 국내는 한류라는 말이 인터넷사전에 등재될 정도인데 외국에서도 그렇게나 화제일까. 행여 우리의 과잉 반응은 아닌지 의구심이 작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류는 ‘분명’ 존재했다. 현지에서 한국 문화는 흥행 수준을 넘어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타이베이 최대라는 스린(士林) 야시장엔 한국 화장품과 옷 가게가 넘쳐났다. 곳곳에 한국 연예인 사진이 걸렸고, 한국산을 강조한 ‘계란빵’ 노점상도 인기였다. 채널V라는 방송은 거의 온종일 한국 예능프로그램을 틀었다. 한 TV 퀴즈쇼에선 가수들 사진을 놓고 “누가 ‘막내(한국어 발음 그대로)’인가”를 맞히는 문제를 풀었다. 시내 공원에서 만난 호유싱 씨는 “어머니는 한국 드라마에, 여동생은 가요에 빠져 매일 채널을 놓고 싸운다”고 집안 얘기를 했다.

함께 방문한 외국 기자들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다. 칠레에서 온 데니스 에스피노사 기자는 배우 윤은혜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가 나온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봤단다.

페루 엘 코메리오의 후안 산체스 씨는 박찬욱 영화감독을 좋아했고, 파트라 홍통 태국 기자는 “‘빅뱅’ 최고”를 연발했다. 미국과 캐나다 친구들은 ‘비빔밥홀릭’이었고, 중남미 언론인 대다수가 귀국 선물로 삼성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그것도 여러 대씩.

당연히 이런 한국 사랑은 고마운 일이다. 과거에 한국 하면 ‘매운 음식, 개고기, 자동차’ 정도나 떠올리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괜히 뿌듯했고, 가벼이 생각했던 걸그룹이 애국자로 보였다.

하지만 되새길 대목도 있었다. 다들 한류란 용어엔 낯설어했다. 현지 방송에서 간간이 쓰기도 했지만, 일반인들은 한참 설명해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부분 되물었다. “왜 굳이 그런 표현을 쓰죠?” 일본이나 프랑스 문화가 인기라고 ‘일류(日流)’ 혹은 ‘프렌치 웨이브(French wave)’라 부르진 않는다는 지적이다. 물론 한류는 중국 언론이 먼저 쓴 말이다. 미국도 1960년대 비틀스나 롤링스톤스를 두고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이라고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 하지만 국내의 한류 찬양은 좀 과하다. “한국 문화상품은 너무 ‘한국’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짙다”는 한 기자의 조언은 여운이 오래갔다.

그런 의미에서 가오슝 노동자박물관 인근 항구에서 마주친 한 설치미술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금속 소재로 만든 아름드리나무인데, 잎사귀마냥 달린 종들이 새가 지저귀듯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우연히 만난 한국말을 배운 여학생은 “참 예뻐요. 한국 사람이 만들었어요. 대만 사람들 모두 좋아해요”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알고 보니 성동훈이란 작가의 ‘사운드 트리(소리 나무)’라는 작품이었다. 석양에 금빛으로 물든 나무는 삭막하기 마련인 부둣가 풍경을 멋들어진 문화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종소리는 홀로 울리는 게 아니다. 그곳의 바람과 어우러질 때 마음을 흔든다. 한류도 잔잔히 끓어야 은근한 맛이 깊다.

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뉴스룸#정양환#대만#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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