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54>‘진중한 파격’ 남간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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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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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제공
대전 동구 가양동에 있는 남간정사(南澗精舍)는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1607∼1689)이 1683년, 나이 77세에 지은 별서(別墅)정원이다. 지금은 소제동의 별당 건물이었던 기국정이 옮겨왔고, 단장이 둘러쳐지고 우암사적공원의 건물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옛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조선집은 방 안에서 집의 영역으로, 집에서 마을의 영역으로, 마을에서 산과 물이 달려 나가는 곳으로 확장되기 때문에 집이 사라졌으면 그 바깥의 영역에서, 바깥이 사라져도 그 집이 있으면 방 안에서 짐작이 가능하다.

남간정사도 난개발의 어수선한 바깥을 뚫고 높이 20m가 넘는 벽오동이 심어진 연못으로 들어서면 갑자기 확 달라진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담으려면 연못은 네모져야 하지만,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려 연못은 부정형의 곡지(曲池)가 되었다. 그리고 가운데의 둥근 섬에는 왕버들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파격적인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계류가 흐르는 바위 위에서 물이 흐르는 자리로 담장을 열고, 집을 들어 올린 파격. 옥류각의 파격이 활달하고 거침없다면 남간정사의 파격은 진중하고 조심스럽다. 그래서 굽이치는 계곡을 타고 앉은 옥류각보다 계곡의 바위들이 여기저기서 솟아 있고, 깔리고, 흩어진 연못을 바라보며 반석 위에 있는 남간정사가 더 강한 인상을 준다. 거기에 소나무, 은행나무, 왕벚나무, 말채나무, 모과나무, 배롱나무 등 유학자의 심성을 수양하는 식물군이 주욱 둘러 있고, 가파르게 올라간 뒷산은 집의 배경으로 우거져 있다.

연못으로 들어오는 물은 두 군데다. 남간정사 뒤쪽의 샘에서 건물의 대청마루 밑을 지나 연못으로 떨어지는 하나가 있고, 동편의 개울에서 들어와 작은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 둘이 있다. 하나는 맑고 청아하며 은근한 소리고, 둘은 힘차고 거침없다. 남간정사의 대청마루에서는 밑으로 흐르는 하나의 소리는 마룻바닥에서 공명했을 것이고, 둘은 직접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남간정사의 협주곡은 그 대목에서 높이 20m의 벽오동이 흔들리며 배경음으로 깔렸을 것이고, 소나무를 스치고 가는 바람의 밀도 높은 소리가 동조하면서 연못으로 꽃을 떨구는 꽃나무들의 춤이 어우러지며 한 계절이 가고, 또 한 계절이 갔을 것이다. 문득 우암의 거문고 소리가 연못의 수면을 흔들고 튀어 오를 것 같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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