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조수진]장강의 앞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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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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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 정치부 차장
조수진 정치부 차장
지난해 여름, 민주통합당 박상천 의원(74·5선)은 땀띠로 고생을 했다. 푹푹 찐 7, 8월 군 보건의료 실태 파악을 위해 28사단 등 7개 군부대, 국군수도병원 등 5개 군 병원을 찾아다닌 결과였다. 그는 지난해 2월과 4월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이 잇따라 사망하자 군 의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실태조사 이후에는 국회도서관에서 일본과 독일의 관련법을 뒤졌다. 그리고 올 1월 ‘군 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군의 상급자나 군의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장병의 진료 요청을 거부하거나 기피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내용. 군 장병이 복무 중 발생한 질병이나 부상을 적기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군 의료와 관련한 국내 최초의 법이다.

그는 법안을 직접 쓴다. 특유의 촘촘한 글씨체로 한 자 한 자 연필로 써내려가면서 중요한 부분엔 밑줄을 긋고 빨간색 펜으로 ○, ※ 같은 기호도 붙여놓는다. 법안제안서를 e메일로 보내는 대신 의원들에게 직접 이해를 구하고 서명을 받는다.

2009년 2월에는 여야 간 다툼이 있는 법안이라도 일단 상임위원회나 본회의에 상정한 뒤 조정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일명 박상천법안)을 발의했다. 그때도 16개국의 사례를 공부해 안을 만들었다. 다수당의 법안 강행 처리와 소수당의 물리적 저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수당이나 소수당 모두를 설득할 만한 논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는 2월 10일 총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그간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77·7선)의 전공은 ‘쓴소리’였다. 가령 2009년 10월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에서는 야간 옥외집회 금지조항(집시법 10조) 헌법불합치 결정과 관련해 “집회·시위 문화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는데 헌법 자구(字句) 해석에만 매달린 결정을 하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라고 따졌다. 위헌 제소의 발단이 된 광우병 촛불시위와 도심 마비 등을 간과하지는 않았느냐는 따끔한 질타였다. 비(非)율사였지만 율사들이 쟁쟁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최우수 의원으로 매번 꼽혔다. 2006년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문회 당시 후보지명 절차상 법적 하자를 지적해 지명 철회를 이끌어낸 것도 그였다. 하루 3시간씩 국회도서관에서 공부를 해온 내공의 힘이다. 하지만 정치후원금 실적은 늘 하위권이었다.

그는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에서의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맞붙어야 할 상대 후보의 조부와 자신의 부친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정치 이전에 사람의 도리가 앞선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연장자인 제가 물러서는 게 옳다”고 했다. 30여 년의 정치인생을 마감하는 보도자료에는 눈물 섞인 아쉬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중국 ‘현문(賢文)’에 “장강의 뒷물결은 앞물결을 밀어내고 세상에 새 사람은 옛 사람을 대신한다(長江後浪催前浪 浮世新人換舊人)”란 말이 있다. 세대교체를 뜻하는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 ‘물갈이’ 경쟁이 가열됐던 이번 4·11총선. 많은 다선 노장이 무대에서 내려간다.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는 게 자연의 이치지만 갈수록 우리 정치는 앞물결을 대신할 뒷물결의 실력이 부치는 듯해 아쉽고 섭섭하다.

조수진 정치부 차장 jin0619@donga.com
#장강#총선#세대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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