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용]빵집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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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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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산업부 기자
박용 산업부 기자
“이율배반적인 얘기로 들릴지는 모르겠습니다. 정부가 자영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 심야영업을 제한한다는데, 오히려 걱정입니다. 다음 날 쓸 신선한 샌드위치 재료를 한 푼이라도 싸게 사려면 새벽에 대형마트에 갈 수밖에 없어요. 영업 중에 빵집 문을 닫을 수도 없고….”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12년째 빵집을 운영하는 A 사장(65)은 매일 밤 12시 무렵까지 가게 문을 연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부부가 번갈아 가며 반죽을 하고 빵을 만들어 근근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수입을 생각하면 아르바이트 직원을 둘 엄두도 나지 않는다. 대기업 계열 빵집의 골목상권 진출을 비판하는 정치권의 엄포도 그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대기업 빵집은 땅값 비싼 번화가나 호텔, 백화점에 들어갑니다. 동네 빵집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오히려 골목마다 치고 들어오는 프랜차이즈 빵집이 더 무섭죠.”

맛과 품질을 표준화한 프랜차이즈 빵집의 공세 속에서 A 사장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만의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부가 빵집을 운영하며 인건비를 최소화했다. 재료는 전날 새벽 마트에서 구입해 신선함을 강조했다. 이렇게 해서 빵 값도 주변 프랜차이즈 빵집의 3분의 2 정도로 유지했다. 눈만 마주쳐도 단팥빵 하나 사서 가는 단골 주민의 인심이 그나마 그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다.

“요즘은 힘에 부쳐요. 자식들은 미래가 없는 빵집을 물려받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가게를 물려받아도 동네 사람을 몰라 ‘동네 장사’를 하기도 어렵겠죠. 제가 힘닿는 데까지 하다가 접을 생각입니다.”

정부나 정치권의 말처럼 대기업 빵집의 골목상권 진출을 막고 대형마트의 영업을 제한한다고 해서 A 사장 같은 영세한 자영업자들에게 당장 희망이 보일 것 같진 않다. 자영업자를 보호하는 정책이 오히려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자영업자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대형마트나 백화점이 없는 곳에 살려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A 사장도 12년 전 지금의 빵집 자리에서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다가 벼랑 끝까지 내몰릴 뻔했다. 비디오가 DVD로 바뀌고, 인터넷으로 영화를 보는 시대가 오면서 사업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다행히 시장의 변화를 눈치 채고 한발 앞서 빵집으로 업종을 바꿔 지금까지 가게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때는 젊었다.

전문가들은 A 사장이 12년 전에 새로운 기회를 찾았던 것처럼 한계에 몰린 자영업자들을 위한 전업(轉業) 지원 프로그램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자영업자 100명 중 6.6명만이 직업훈련을 받았다. 10명 중 3명은 폐업을 하고 유사 업종에 다시 창업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유럽이나 일본처럼 대를 이어 차별화된 서비스로 승부를 거는 ‘100년 가게’를 키우는 것도 ‘골리앗’ 기업과 경쟁하는 방법이다. A 사장이 지금까지 버틴 것도 동네 주민과의 유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개발연구원 김은경 박사는 “자영업자의 가업 승계를 유도하는 세제와 자금 지원 등의 방안도 생각해볼 만하다”고 말한다.

동네 빵집 사장의 눈물은 선거가 끝나면 그칠까. 대기업 비판에만 열을 올리는 정치권을 보면 그럴 것 같진 않다. ‘여의도 점령’보다 진심과 실질적인 해법으로 빵집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인이 있다면 외국에서 수입이라도 하고 싶은 게 요즘 유권자 자영업자의 심경일 듯하다.

박용 산업부 기자 parky@donga.com
#뉴스룸#박용#대기업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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