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주주 국민연금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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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의 책임을 최근 1년 보수액의 6배 이하로 제한하려는 대림산업의 정관 변경 시도에 국민연금과 외국인투자가들이 제동을 걸었다. 국민연금이 주주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한 것이다. 최근 하이닉스 주총에서도 최태원 SK 회장의 사외이사 연임 문제를 놓고 국민연금이 내홍을 겪었다. 의결권위원회에서 토론과 표결 끝에 ‘최 회장의 하이닉스 이사 선임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중립 의견이 의결되자 ‘연임 불가’를 주장하던 위원 2명이 사퇴한 것이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려는 과정에서 불거진 사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2005년 소버린자산운용의 SK㈜ 경영권 개입 시도를 계기로 본격화됐다. 당시 SK 40% 대 소버린 37%로 우호지분이 갈렸을 때 3.6%를 가진 국민연금이 SK를 지지함으로써 분쟁을 종식시켰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기준도 SK 주총이 열리기 보름 전 부랴부랴 마련됐다. 이후 기업의 주총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일이 많았다. 작년에는 “거대 권력이 된 대기업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가장 적절하다”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발언이 논란을 불렀다.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개별 주주의 경영 감시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 경영을 감시하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평가된다.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은 2004년 월트 디즈니의 회장을 사퇴시켰다. 캘퍼스가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 리스트(포커스 리스트)를 발표하는 6월엔 미국 증시가 들썩거린다. 5% 안팎의 지분을 가진 총수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우리의 대기업 풍토에서도 검증된 전문가들이 주요 기업의 경영과 그 오너들의 움직임을 감시함으로써 한국의 기업문화 전반이 건전해질 수 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정권이 밉보인 기업을 손보거나, 정치 낭인을 ‘낙하산’ 태워 기업 임원으로 내려 보내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금을 통해 국가가 기업을 지배하는 ‘연금사회주의’ 우려도 있다. 외풍에 휘둘리지 않도록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수익성 이외 목적을 위한 주주권 행사를 제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이 이사장을 임명하는’ 국민연금의 현행 지배구조를 정치중립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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