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원전 사고 은폐한 책임자 영전시킨 한수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5일 03시 00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지난달 9일 고리 원전 1호기의 전원이 12분 동안 끊긴 사고를 한 달 넘게 은폐했다. 원자력 안전관리에 중대한 허점을 드러낸 심각한 사태다. 더구나 전원이 끊겼을 때 바로 작동해야 할 비상디젤발전기 두 대가 움직이지 않았고 최후 수단인 예비 비상발전기마저 먹통이었다. 긴급사태에 대비해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던 한수원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됐다.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의 폭발사고도 강력한 쓰나미가 밀어닥친 뒤 침수된 비상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아 발생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 정부는 부랴부랴 대통령 직속기구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만들고 2015년까지 1조1000억 원을 투입해 안전성 강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선 사고 발생을 즉각 보고하는 시스템부터 구멍을 드러냈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사고 발생 15분 이내에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도 한수원 최고책임자인 김종신 사장에게 보고가 되지 않았다. 김 사장이 사고를 안 것은 이달 11일이었다. 우연히 사건을 알게 된 지방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그때서야 직원들이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역시 한 달 넘게 아무것도 몰랐다. 보고를 누락한 담당 책임자는 그사이 한수원 본사의 위기관리실장으로 영전했다. 위기관리를 책임지는 자리에 위기를 초래한 사람을 앉힌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인 고리1호기는 환경단체로부터 폐쇄 요구를 끈질기게 받았다. 사고가 알려질 경우 주민과 환경단체들의 압박이 더 커질 것을 의식해 한수원 담당자들이 은폐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투명한 보고로 불안감을 불식시켜야 했다. 사고 은폐는 원자력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을 키울 뿐이다.

이번 사고는 차단기를 하나씩 테스트하도록 돼 있는 정비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졌다. 원전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데도 직원들의 근무기강에는 나사가 빠져 있었다. 다행히 원자로가 정비기간이어서 멈춰 있었고 12분 만에 전원이 복구되었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아찔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원전 당국은 안전수칙 및 보고의무 위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를 엄하게 문책해야 한다. 그러나 고리1호기를 폐쇄하느냐, 계속 가동하느냐의 문제는 전문가의 구체적인 검토를 거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목소리 큰 환경단체들이 공격한다고 해서 떠밀리듯 폐쇄 결정을 내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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