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26>‘유가의 정원’ 서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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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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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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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의 서석지(瑞石池)는 규모는 작지만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정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원림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 정원을 만든 석문 정영방(石門 鄭榮邦·1577∼1650)은 퇴계 이황-서애 유성룡-우복 정경세로 이어지는 퇴계학파 삼전(三傳)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서석지는 온갖 유가의 이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조그만 정원이 조선의 3대 원림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더구나 소쇄원과 부용정이 주변의 자연과 동화되어 그 구분이 모호한 반면에 서석지는 자연과 정원의 경계가 뚜렷하다. 정명론(正名論)에 의한 인본주의를 주장한 성리학의 연구자답게 정영방은 서석지를 담으로 한정했다.

그리고 거기에 못을 팠다. 못을 판 이유는 당연히 연못을 가지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마을의 안산 격인 나월산의 화기를 막기 위한 풍수적 이유에서이기도 하다. 서석지의 전체적인 방향이 동남향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못을 파는 중에 땅속에서 많은 바위들이 나왔고, 정영방은 이 바위들을 보며 기가 막힌 영감을 받는다.

바위를 통해 거기에 유가의 이상들을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 나오는 돌마다 ‘맹자’ ‘중용’ 등에서 따온 이름들을 붙인 것이다. 예를 들면 서석지에는 탁영반(濯纓盤)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탁영’이란 굴원의 ‘어부사’에 나오는 말로 ‘갓끈을 씻는다’는 뜻이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는다는 말로, 세상에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가린다는 뜻으로 유가의 출처관(出處觀)을 나타낸다. 정영방은 이 바위를 절묘하게 배치해서 탁영반은 연못에 물이 많을 때는 잠기고, 물이 줄어들 때는 나타난다. 바위와 바위의 이름과 현상이 그대로 경전의 구절을 낭독하고 있는 것이다.

서석지라는 이름도 이렇게 해서 생긴 아흔 개 가까운 바위에서 나왔다. 상서로운 돌이라는 의미다. 그러고는 연못을 ‘ㄷ’자로 만들어 튀어나온 부분에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국화를 심어 ‘사우단’이라고 불렀다. 모두 선비의 곧은 절개를 상징하는 식물이다. 연못의 동북쪽에 있는 주인의 거처인 주일재는 연못을 바라보게 지은 것이 아니라 이 사우단을 바라보게 배치했다. 그리고 강학 공간인 경정은 연못 전체를 조감한다. 대문 옆으로는 큰 은행나무를 심어 많은 인재들이 나올 것을 기원했다. 공자를 본뜬 것이다. 이렇게 유가의 정원이 완성되었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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