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토머스 프리드먼]반복되는 시리아 민간인 학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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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반군을 격퇴하기 위해 시리아 정부군이 홈스를 난타하고 있는 장면은 바샤르 알아사드의 아버지 하페즈가 정확히 30년 전에 주연했던 나쁜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1982년 4월 나는 기자로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었다. 그곳에서 두 달 전 시리아 하마 시에서 일어났던 반란에 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페즈 알아사드 당시 대통령이 하마의 모든 주민을 상대로 폭격을 퍼부음으로써 이슬람형제단이 이끌었던 반란을 진압했다는 이야기였다. 하마 시에 대한 봉쇄가 풀린 그해 5월 시리아 정부는 국민에게 그 파괴된 도시를 둘러보고 교훈을 얻도록 권장했다. 나도 그곳에 갔다. 끔찍했다. 거의 모든 빌딩은 파괴돼 있었다. 국제앰네스티는 당시 하마에서 2만 명 정도가 죽었다고 추정했다. 그 후 나는 ‘하마 룰’이라는 책을 썼다.

하마 룰은 전혀 규칙이 아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것이다. 집 안에 있는 적들에게 폭격을 가해 적들의 아들과 그 아들의 아들에게까지도 결코 공포를 잊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다시는 정부에 맞서려는 꿈도 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30년 후, 그 아이들의 아이들은 공포를 잃어버렸다. 이번에는 한 도시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일으킨 반란이 아니다. 시리아 전역에서 청년들이 일으키고 있다. ‘기다리는 세대: 중동 젊은이들의 실현되지 않는 약속’의 공동저자인 나브테즈 딜론과 타리크 유세프는 중동에서 15∼29세인 1억 명 이상의 청년들을 주목했다. 그들은 이 청년들의 정부가 청년들에게 약속한 일자리, 결혼 기회, 주택 제공 등이 이뤄지지 않았고 바로 이것이 시위를 촉발시켰다고 지적했다.

시리아는 노르웨이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요구는 시리아에서 상연 중인 드라마가 아니다. 시리아는 종족과 종파가 매우 복잡한 나라다. 알아사드가 이끄는 시아파의 변종 알라위파는 인구의 12%를 차지하지만 정부와 군, 정보부를 장악하고 있다. 인구의 75%는 수니파 무슬림이고, 인구의 10%는 기독교도다. 시리아의 반란은 시민으로 대우받으려는 시리아 청년들의 열망에서 시작됐다. 그것은 무정파적이고 비폭력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알아사드는 폭력적인 대응을 촉발하는 하마 룰로 응답했다. 이것은 모든 측면에서 분파주의 공포를 불러왔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알라위파는 알아사드에게 집결하고 있다. 알라위파와 알아사드 정권에서 혜택을 받고 있는 약간의 수니파는 이집트에서 벌어진 축구경기장의 폭동과 혼란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알아사드냐, 혼란이냐? 우리는 알아사드를 택할 것이다”고 말한다. 이상적으로 우리는 알아사드의 1인 통치로부터 다수 합의 정치체제로의 평화로운 이양을 원한다.

나는 알아사드가 권력을 이양하도록 하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의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두 개의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 없어져야만 한다. 하나는 중국, 이란, 러시아의 지원이다. 유엔과 유럽연합, 아랍 국가들은 러시아, 중국, 이란이 비무장 시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알아사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도록 해야 한다. 중국, 이란, 러시아는 미국의 비난을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나라의 비난에는 신경을 쓴다.

다른 주춧돌은 오직 시리아인들이 제거할 수 있다. 시리아 야당은 단결해 알라위파를 쫓아내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시리아 야당이 다원체제의 시리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국민과 세계에 입증할수록 알아사드는 약해질 것이다. 시리아 야당이 분파돼 있을수록 알아사드는 더 강해질 것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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