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영수]국민 눈높이 과소평가하는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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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거를 앞두고 요즘처럼 정치에 대한 관심과 혐오가 교차되는 예도 드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선거를 통해 정치권의 판도 내지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화 이후 요즘처럼 국민들이 노골적으로 정치에 대한 혐오를 표출한 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민주정치란 주권자인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고,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 다각도로 수렴된 국민의사를 국정에 반영하고 결정하는 과정이다. 비록 기술적 전문성의 문제로 인해 직접민주제가 아닌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국민의 의사와 이익을 무시하는 정치는 결코 민주정치일 수 없다.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정치인들의 눈높이가 국민의 눈높이와 전혀 맞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민들의 의사를 확인하고 수렴해야 할 정치인들이 전체 국민이 아닌 주변의 몇몇 사람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여야의 정치활동 내지 정책 공히 마찬가지다.

선심 남발로 지지율 높일 수 없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것은 국민들이 여당에 대해 기대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당명을 선택한 것일까. 민주통합당이 통합과 영입을 통해 몸집을 키우는 것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일까. 선거를 앞두고 정당들이 앞다퉈 선심성 정책들을 쏟아내는 것으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이런 대책으로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확인됐던 정당 혐오증이 치유될 수 있을까.

물론 정당들도 나름대로 많이 조사하고 검토해서 당명도 바꾸고, 영입도 하고, 정책도 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눈높이 자체가 국민과 맞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런 조사나 검토가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대다수 국민이 느끼고 있는 것을 정치인들이 느끼지 못한다면, 즉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정당들의 노력은 모래성 쌓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04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협력으로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을 동원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할 당시, 제17대 국회의원선거를 전후로 나타난 탄핵 후폭풍을 예상했던 국회의원은 별로 없었다. 국민 정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면 심상치 않은 반작용이 강력하게 표출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탄핵에 찬성하는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다가 그릇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최근 복지예산 증액과 군 장병 월급의 대폭 인상에 여야가 경쟁하고 있을 때, 국민은 그 부담이 결국 세금으로 전가될 것이라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국가예산을 증액하고, 국가부채를 늘려서라도 국민에게 선심을 쓰면 지지율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하는 정치인들은 국민 수준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국민이 기대하는 정치인은 냉정하게 현실을 분석하고, 이를 국민에게 솔직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인물, 그러면서도 국민과 함께 노력함으로써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일 것이다. 우리의 현재가 어렵더라도 그런 ‘지도자’가 앞장설 때 국민은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국민의 저력 또한 확실하게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국가발전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오히려 양자는 상승작용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선진국 역사도 이를 보여준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갖춰져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전제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국민의 공감을 얻어 동의와 협력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근 20년간 눈부신 발전을 보였던 한국 민주주의가 최근 몇 년간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치인들이 국민과 눈높이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인 국민의 자발적 동의와 협력을 이끌어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함으로써 국가 발전 또한 과거에 못 미치고 있다.

민주주의와 국가발전 상승작용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그리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인들이 국민을 신뢰하지 않고, 단지 혜택과 표를 쉽게 바꿀 수 있는 우민(愚民)으로 대우할 경우에는 국민 또한 정치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공멸일 수밖에 없다. 당장 오늘내일의 일은 아닐지라도 머지않은 장래에 그러한 극단적 상황이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의 눈높이를 과소평가하지 말고 국민을 존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눈높이를 맞추고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고, 국민의 생각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정치에 희망을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첫 단추다.

장영수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jamta@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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