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미석]울타리 밖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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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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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전문기자
고미석 전문기자
미국의 아카데미 영화제만으로 부족해서 영국과 프랑스 아카데미도 죄다 10개 부문 이상씩 수상 후보에 올렸다. 타임지까지 나서 ‘2011 최고의 영화’로 꼽아줌으로써 마침내 움직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한데 이 영화를 만든 프랑스 출신 감독은 지난해 영화를 선보일 때만 해도 할리우드의 무명감독이자 비주류에 속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SNS 신기술, 편가르기에 악용

그가 들고 나온 영화 ‘아티스트’는 시류를 비껴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역행하는 흑백 무성영화였기 때문이다. 현대 대중과 그들의 대중문화는 ‘대세’라는 큰 흐름에 고개 숙이지 않는 태도를 쉽게 용서치 않는다. 트렌드에 동조하지 않는 것은, 심한 경우 공동체를 모욕하는 행위로까지 간주되는 세상이다. 한데 화려한 볼거리의 3차원(3D) 영화가 등장한 시대에 그는 겁도 없이 거꾸로 가는, 그야말로 한참을 뒷걸음한 영화를 내놓은 것이다.

놀랍게도 기술풍요 자원풍요 자유풍요의 세상에 흑백 이미지, 표정과 몸짓의 표현법에 의지한 그의 시대착오적이라 할 영화가 예외적으로 칭송받고 있다. 대세라면 너도나도 저항감조차 없이 백기 투항하는 시대에 아마도 대중과 공감의 마법이 통한 모양이다. 감독은 말한다. 만약 자신이 아웃사이더가 아니었다면 흑백 무성영화는 엄두조차 못 냈을 것이라고.

문화부터 비즈니스까지 아우른 영국의 스타일 잡지 ‘모노클’을 2007년 창간한 타일러 브륄레도 디지털의 거센 물살을 유유히 거슬러간 역발상으로 성취를 이뤘다. 캐나다 출신 편집자 겸 발행인 브륄레는 누구나 온라인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현실에서 ‘손맛이 느껴지고 재미있고 수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종이잡지를 만들어 한 해 독자 35%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정보기술(IT) 시대에 종이매체는 희망이 없다는 주류의 견해와 동의하지 않은 결과다.

좁은 울타리 안을 기웃거리지 않고 황량하고 넓은 바깥으로 나가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며 ‘나 홀로’ 여정을 선택한 사람들. 오리들처럼 다들 옹기종기 모인 울타리의 바깥에서 숨은 보물을 발견한 것이다. ‘저수지 보러 간다/오리들이 줄을 지어 간다/저 줄에 말단이라도 좋은 것이다/꽁무니에 바짝 붙어 가고 싶은 것이다/한 줄이 된다/누군가 망가뜨릴 수 없는 한 줄이 된다/싱그러운 한 줄이 된다/그저 뒤따라가면 된다/뒤뚱뒤뚱 하면서/엉덩이를 흔들면서/급기야는 꽥꽥 대고 싶은 것이다/오리 한 줄 일제히 꽥 꽥 꽥.’(신현정의 ’오리 한 줄‘)

오리는 순진하므로 ‘싱그러운 한 줄’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의 ‘줄 서기’는 나약함을 위장하는 수단일지도 모른다. 무리에 순종하고 대세에 순응하는 사회는 어딘지 불온하고 불안하다. 파시즘의 어원을 살펴보면 ‘무리’ 내지 ‘끼리끼리’라는 뜻이 있다 한다. 이것이 ‘집단 이기’ 혹은 ‘집단 광기’의 역사와 끈을 맺은 과정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구경한 바와 같다.

패거리즘 사고에서 벗어나야

소셜 네트워크 하라고 SNS 신기술 내놨더니 ‘넌 어느 편이냐’를 가르는 데 적극 활용하고, 남의 생각을 흉내내고 슬그머니 묻어가는 정신의 패거리즘이 시대정신처럼 되어버린 사회. 이제 ‘시대의 조류’에 무임승차하는 집단적 사고에서 벗어나, 앙심과 원망과 분노와 비아냥을 넘어서 오래 간직해온 각자의 꿈을 밀어붙이겠다는 결심을 해볼 수는 없을까.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 보는 데, 지금 어느 쪽이 대세인지 좇아가는 데 아까운 시간 낭비하는 대신 무리에서 잠시 한 발 떨어지면 세상이 좀 달라 보이지 않을까.

‘밤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다/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남이 터뜨려 주면 프라이감이 되지만/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되지/환골탈태는 그런 거겠지’(유안진의 ‘계란을 생각하며’)

고미석 전문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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