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단상/김윤태]행복은 개인의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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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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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오 행복이여, 우리의 목표이자 목적이여!’ 18세기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유명한 시 구절이다. 프랑스에서 디드로가 편집한 백과사전의 ‘행복’ 항목도 “모두가 행복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은가?”라고 물었다. 현대사회에서 행복은 개인의 권리다. 헌법에도 국민의 ‘행복 추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고대 서양에서 행복은 미덕, 신성한 은혜, 신의 은총과 같은 의미를 가졌다. 동양에는 아예 행복이라는 말이 없었다. 일본 학자가 번역하면서 사용한 ‘행복’은 물질적 풍요를 의미했다. 삶의 만족을 가리키는 한자는 ‘안락’이 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개인의 노력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사고가 확산됐다.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 상품과 사치재를 구입할 때 행복하다고 느꼈다. 소비사회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사고팔았다. 그러나 지난 50년 동안 서양사회의 실질임금이 증가했지만 행복감은 상승하지 않았다. 한국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행복감은 밑바닥이다.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나 홀로 볼링’에서 1960년대 후반 이후 혼자 볼링을 하는 미국 사람이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관계가 약화되면서 행복감이 약화됐다. 한국 사람들은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돈을 위해 야근을 선택한다. 가족을 만날 시간이 없으니 행복감은 낮아진다. 퍼트넘이 지적한 대로 사회적 자본이 중요하다.

최근 유럽에서는 ‘사회적 질’의 개념으로 행복을 측정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사회적 질은 심각하게 악화됐다. 소득이 증가하고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지만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불안이 커졌다. 정부와 국회에 대한 신뢰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계층 간 차별은 급속히 증가했다. 자기계발에 대한 관심은 커졌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이상주의는 감소했다. 무기력한 사회가 됐다.

사회적 질은 개인의 행복에도 영향을 준다. 소득을 높이는 경제정책에만 의존하지 말고 사회의 질을 높이는 사회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최근 당명을 바꾼 새누리당은 ‘국민이 행복한 복지국가’를 강령에 포함했다. 민주당도 ‘보편적 복지’를 내세웠다. 경제 못지않게 사회가 중요하다고 보는 민심에 대한 반응이다. 이제 정치권은 구체적 정책과 재원조달 방법으로 유권자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행복#계몽주의#OE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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