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영호]김승유와 라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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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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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주간동아팀장
윤영호 주간동아팀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외이사들은 만류했지만 뜻을 꺾지는 못했다고 한다. 김 회장이 끝내 물러난다면 그 결단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는 우리 금융사에서 후계 승계의 새로운 전례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용단은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사퇴 케이스와 비교된다.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다. 모두 최고경영자(CEO)로 오랫동안 일했고,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자기 은행을 금융권 선두그룹으로 끌어올렸다. 카리스마도 대단했다. 다른 점이라면 김 회장이 대졸(고려대) 출신의 잘나가는 엘리트 은행원이었다면, 라 전 회장은 상고를 졸업한 ‘고졸 신화’의 주인공이었다는 점 정도다.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한 사람은 흔히 지구가 자신을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겠지만 마음속엔 늘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혹여 주변에서 퇴진 이야기라도 나올라치면 ‘이 회사를 내가 이만큼 키워놨는데…’라며 서운한 감정부터 생긴다. 물론 주변에서 부추기기도 한다. 라 전 회장도 그런 경우가 아니었던가 싶다.

2010년 말 라 전 회장은 명예롭지 못한 일로 신한은행을 떠났다. 지금은 누구나 회장 자리에 대한 라 전 회장의 집착에서 비롯된 경영권 분쟁이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평소 자기관리에 그렇게 철저하고 총기가 넘치던 사람도 노욕(老慾) 앞에선 별수가 없는가”라는 탄식이 쏟아지기도 했다.

신한금융 내부에서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 손’이 인사에 작용한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신상훈파’로 분류된 임직원들이 올 1월 인사에서 구제를 받았다지만 핵심 중의 한 사람인 김모 본부장은 이례적으로 2년 만에 물러났다. 2010년 말 퇴임한 이모 전 부행장은 다른 전직 부행장과 달리 자회사에 자리 하나 마련해 주지 않았다. 신상훈 전 사장 쪽에서는 “한쪽으로는 ‘화합형 인사’를 했다고 언론 플레이를 하고, 다른 쪽으로는 이렇게 뒤통수를 쳐도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승유 회장의 자진사퇴 의사가 돋보이는 것은 경쟁 은행의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다. 일부 사외이사 사이에서 “외환은행과의 통합 작업을 마무리할 만한 사람은 김 회장밖에 없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어서다. 당사자들은 “하나은행과 김 회장을 위해서”라고 강변할지 모르나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다. ‘김 회장밖에 없다’는 것은 그동안 후계자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뜻이니, 결국 김 회장에게 누가 될 뿐이다. 자칫하면 김 회장의 진정성마저 의심받게 만들 수도 있다.

하나금융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김 회장의 사퇴 결단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투명하고 공정한 승계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에 따라 새 회장을 선임해야 한다. 그것이 김 회장의 퇴진을 더욱 값지게 만드는 일이다.

벌써부터 금융권 안팎에선 “올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어 금융권에서 누구를 손보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김 회장이 그 타깃이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김 회장으로선 참 황당하겠지만 그가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라는 게 이유의 거의 전부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땐 누가 하나금융지주를 넘보게 될지 알 수 없다. 하나금융은 승계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 그런 불행한 사태를 막아야 한다. 그 또한 김 회장의 몫이기도 하다.

윤영호 주간동아팀장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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