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성미]‘소통의 본질’ 보여준 마이클 샌델 ‘토론식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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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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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미 문화부 기자
신성미 문화부 기자
“그런데 당신 이름은 뭐죠?”

18일 오전 서울 동아미디어센터 1층 오픈스튜디오. 채널A의 ‘특별토론 공생발전과 정의’ 녹화 현장에서 강연자인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방청객 40여 명과 스튜디오 밖의 시민들에게 의견을 구하면서 일일이 이름을 물었다. 의견을 말하기에 앞서 이름을 밝히는 것은 토론의 기초다. 하지만 강연자와 쌍방향 토론을 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청중은 의견을 말한 뒤 샌델 교수가 이름을 묻고 나서야 약간은 어색한 표정으로 이름을 밝혔다. 샌델 교수는 청중이 말해준 이름을 서툰 발음으로 부르며 존중을 표현하고 자연스러운 소통을 이끌었다.

하버드대 명강의로 꼽히는 샌델 교수의 ‘정의’는 1000여 명이 듣는 대형 강의지만 토론식 진행으로 널리 알려졌다. 반값 등록금, 고령화 사회 등 한국 사회의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이날 강연에서도 샌델 교수는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처럼 묻고 또 물으면서 청중으로 하여금 스스로 사회 현안과 그 바탕에 깔린 철학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든 것이다.

방청객들은 자유롭게 토론에 참여할 것이라는 사전 공지를 받지 못했기에 처음엔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샌델 교수가 불을 지피면서 토론은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주로 20대인 방청객들은 녹화가 끝난 뒤 제작진에게 “샌델 교수가 내 의견을 경청해줘 참 고마웠다” “딱딱할 수 있는 주제들인데도 2시간 반이 후딱 지나갔다”면서 경이로웠다는 느낌을 표시했다.

샌델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제목만 들어도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던 첫인상과달리 출판시장이 죽어간다는 한국에서 인문서로는 이례적으로 110만 부 이상 팔렸다. 이 책에는 방대한 철학 지식도, 정의(正義)가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의 새로운 정의(定義)도 나와 있지 않다. 강의와 마찬가지로 책에서도 그는 독자들로 하여금 다각도로 사고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이끄는 항해사 역할만을 했다. 그의 인도대로 주체적인 지적 유희에 빨려 들어간 독자들이 이례적인 밀리언셀러를 만들어낸 것이다.

샌델 교수의 강연 현장을 지켜보며 ‘소수정예’ 강의에서조차 생산적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 한국의 대학 강의실이 떠올랐다. 교수는 부르고 학생들은 받아 적는 고질적인 한국 강단의 풍토에 이번 강연이 신선한 자극을 주길 바란다. 처음 보는 학생에게 눈을 맞추며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토론의 기술이자 소통의 시작이라는 사실도.

신성미 문화부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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