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노지현]구멍 뚫린 관리감독… 줄줄 새는 보육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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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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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 교육복지부 기자
노지현 교육복지부 기자
보육지원금을 많이 받으려고 어린이집 원생 수를 부풀린다는 기사가 동아일보 12일자에 나간 뒤 서울 관악구의 어린이집 원장 3, 4명이 구청을 찾아갔다. 원장들은 “보조금 유용은 다 옛날 일이고, 요즘 원장들이 다들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데 이런 기사가 나오느냐”며 구청에 항의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기사에 대한 불만은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비리가 적발된 어린이집이 모두 몇 건이냐는 질문에 서울시 관계자는 “잘하는 어린이집 원장도 많은데, 부정적인 사례가 언론에 자주 발표되면 보육종사자들의 기가 꺾인다”며 통계를 밝히지 않았다. 취재를 위해 얘기하는 동안 그는 ‘어린이집 원장 대변인’ 같다는 느낌을 줬다.

언론에 드러난 서울시내 어린이집 처벌건수는 지난해 3건에 불과하다. 이 관계자는 “이보다 적발한 것은 훨씬 더 많고 문제가 된 어린이집은 보조금을 환수했으므로 우리가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명단이나 관련 통계를 공표할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보건복지부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복지부 관계자는 “어린이집에 16개 항목으로 국비가 나가고, 지방자치단체가 추가로 보조한다”며 “항목별로 얼마만큼 어디로 흘러가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자료는 없다”고 대답했다.

이런 뜨뜻미지근한, 때로는 어린이집을 싸고도는 당국의 태도에 가장 실망하는 건 보육교사와 부모들이다. 한 보육교사는 “잘릴 각오로 구청에 제보해도, 구청의 단속의지가 약해 제보자만 피해본다”고 지적했다.

어느 주부는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문제점을 구청에 알렸더니 다음 날 원장에게서 “당신이 일렀느냐”는 항의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아이에게 혹시 해코지라도 할까 봐 걱정돼서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올해 어린이집으로 흘러들어가는 예산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합쳐 5조 원 규모다. 정원이 65명인 서울의 어린이집이라면 한 달 평균 3000만 원가량을 국가에서 보조받는다. 1년이면 3억6000만 원이다.

지금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이는 130만 명 정도지만 3월부터 0∼2세를 위한 무상보육이 시작되면 부모들이 그동안 다니지 않던 자녀까지 어린이집에 맡길 가능성이 크다.

보육예산을 아무리 늘린다한들, 이렇게 구멍이 숭숭 뚫린 시스템에 혈세를 쏟아 붓는다면 특수를 누리는 대상은 따로 생길 수밖에 없다. 혜택을 실제로 받아야 하는 당사자는 외면한 채.

노지현 교육복지부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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