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안철수 교수, 정치 할지 말지 이제는 말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3일 03시 00분


연말 연초 거의 모든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들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 출마를 가정해 대선 후보 지지도를 알아보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안 교수는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양자 대결에서 모두 1위, 다른 잠재적 대선주자들까지 포함한 다자(多者) 대결에서는 모두 2위를 기록했다. 안 교수는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이처럼 대권에 근접해 있는데도 여전히 신비주의 행보를 계속하면서 대선 출마에 관해 가타부타 말이 없다.

안 교수가 대통령 후보로 나설 뜻이 있다면 지금 당장 정치무대에 올라온다 해도 사실은 늦다. 대선까지 1년도 남지 않았다. 우리는 안 교수가 대통령감이냐, 아니냐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스스로 ‘대통령이 돼야 할 이유’를 국민 앞에 밝히고, 예비후보로서 검증과 평가를 달게 받아야 한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은 국민에게 바른 선택을 위한 숙려(熟慮)기간을 주는 것이 의무이자 최소한의 도리다.

대권 도전에 뜻을 둔 사람들은 오랜 세월 정치무대에서 역량과 도덕성에 대한 검증과 평가를 받았다. 검증을 받지도 않은 사람이 국민에게 판단할 시간마저 주지 않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국민에 대한 눈속임이다. 수많은 갈등이 난마처럼 얽힌 한 나라의 국정(國政)은 대학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청춘 콘서트’와는 한참 다르다. 아마추어는 ‘아름다운 상식’이라는 말도 있지만, 진짜 프로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구청에서 실시하는 인터넷 교육을 3∼4개월 받은 사람이 별안간 정보기술(IT) 보안 전문가로 나선다면 안 교수가 인정하겠는가.

안 교수가 최근 국정 여러 분야에 걸쳐 전문가들로부터 대권 과외를 받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혹 그것으로 나름대로 집권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안 교수가 정치와 국정을 너무 쉽게 판단한 것이다. 정치, 경제, 국방안보, 치안, 외교, 복지, 교육 등 만기(萬機)를 다뤄야 하는 대통령의 책무와 역량은 ‘속성 과외’로 습득할 수 없는 어려움과 무게를 지닌다.

일각에서는 안 교수가 4월 총선을 건너뛰고 7∼8월 여권과 야권의 대선 후보 경선도 지켜본 뒤 9월쯤 극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시나리오를 가상한다. 한나라당 박 비대위원장에게 맞설 뚜렷한 대항마가 없는 야권에서 잔챙이 후보를 내면 여론조사 방식으로 준결승을 치러 공식 후보가 되고, 그 상승세를 몰아 여권 후보와 최종 격돌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안 교수가 지금까지 지켰다는 상식이나 원칙과는 거리가 먼 꼼수다. 정치 월반(越班)도 어느 정도여야지, 중고교 대학 대학원 다 건너뛰고 대학교수가 되듯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안 교수는 이제 대선에 출마할지 말지를 정직하게 말할 때다. 만약 대선에 출마할 뜻이 없다면 벌써 4개월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는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분명하게 요구해야 한다.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들도 안 교수를 여론조사에 포함시키려면 검증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베일 속에 있는 사람을 두고 여론조사를 하는 것은 국민의 선택을 오도(誤導)할 수 있다. 현재 안 교수는 기성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바람을 타고 있지만 본격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은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설거지를 안 해서 그릇을 깨지 않았거나, 운전을 하지 않아서 사고를 내지 않은 것은 진정한 실력이라고 볼 수 없다. 어느 쪽이든 안 교수의 당당한 선언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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