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태현]나라의 품격과 외교적 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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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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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중앙대 교수·국제정치학 국가대전략연구소장
김태현 중앙대 교수·국제정치학 국가대전략연구소장
사람들이 일상에서 하는 행동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계획된 행동이다. 미리 정한 목표와 행동계획에 따른 것이다. 그것을 보면 그의 꿈이 얼마나 큰지, 실천계획이 얼마나 합리적인지를 알 수 있으니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수 있는 한 지표가 된다. 다른 하나는 대응행동이다. 생각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대처하는 행동을 보면 문제를 인식하는 방식과 대처능력을 알 수 있어 이 또한 그의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지표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실천과정에서 차질이 있기 마련이고 계획대로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누구를 평가할 때 목표가 뭔지, 그걸 위해 뭘 할지만을 물어서는 모자란다. 시간을 두고 그 행실을 겪어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 곧 한 사람의 인품과 능력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의 겉치레가 아니라 평소 행실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 다양한 상황을 설정하고 심층면접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나라의 외교에도 계획된 행동과 대응행동이 있다. 제대로 된 나라,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세계 속에서 국가의 위상과 이익을 파악하고 가용한 수단을 분석해 그 이익을 지키고 높이기 위해 수립한 행동계획이 있다. 흔히 국가전략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아마 지금쯤 연말 대선을 앞두고 큰 꿈을 꾸는 정치인과 그 참모들이 그것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돌발사태 대응때 國格 드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세계 70억 인구, 193개 주권국가가 어울려 빚는 게 국제정치다. 그 속에서 나라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회와 도전에 노출된다. 그 기회를 살리고 도전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그 나라의 품격이 우러나온다. 요즘 회자되는 국격(國格)이 바로 그것이다. 국가의 소프트파워 또는 매력과도 관련이 있다.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적 매력보다 훨씬 더 중요한 소프트파워 자원이 바로 나라의 품격이다.

나라의 품격은 대규모 정상회의나 올림픽과 같은 행사를 유치한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치르는지에 따라 높아지고 낮아진다. 더 중요한 것이 날마다 일어나는 현안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의 선원이 단속 경찰을 살해하고, 일본 정부가 연로한 일본군 위안부들의 절절한 요구를 외면하고, 미국이 이란에 대한 추가제재를 요구하고,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이 사망하는 등 예기치 않은 사태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나라의 품격이 드러난다.

그처럼 예기치 않은 사태에 대응하는 방식이 바로 외교적 태세다. 품격 있는 외교태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필자가 보기에 다음의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첫째, 인류 보편의 가치에 기초한 원칙 있는 외교다. 보편적 가치와 특수한 입장이 부딪치면 보편을 우선하고 꼼수를 배제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예컨대 추구하는 가치가 인권이라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내세워 북한 인권에 대한 유엔 결의에 기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물론 보편적 가치가 무엇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예컨대 주권과 인권은 때로 충돌하는 가치고, 주권 불가침과 인도주의적 개입은 상충하는 두 가지 원칙이다. 우리의 입장 및 정서와 조응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에 설득력이 있는 가치체계를 정립하기 위한 철학적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둘째, 국가이익으로 절제된 외교다. 가치와 원칙을 추구한다고 방만한 외교를 행하면 인정이 아니라 비웃음을 산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다고 가산을 탕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국제정치는 비정하다. 비정한 국제정치에서 국가의 생존과 국민의 복지라는 기본 이익이 외교의 고삐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가치와 원칙에 어긋나고 핵심 국가이익을 침범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사자처럼 대응해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늑대를 떨게 하는 위용과 법구경의 구절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담대함이 필요하다. 무자비한 테러조직이 국민을 납치해 무리한 요구를 하는데 자비와 선처를 호소하는 것으로만 그친다면 속된 말로 ‘쪽팔릴’ 따름이다. 남들은 또 얼마나 우습게 볼 것인가.

꼼수 배제한 원칙 외교 펼쳐야

남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시간을 두고 거듭되는 선행이 필요하다. 그래도 한 번의 잘못으로 그 모든 것을 잃고 마는 것이 세상사다. 남들의 인정이란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쉬운, 참으로 귀한 재산이다. 그래도 일단 쌓고 나면 한두 번의 잘못은 실수려니 눈감아주는 것이 세상 인심이니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올해는 우리나라와 미국을 포함해 세계 50여 개 나라에서 선거가 예정돼 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가변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20대 젊은 지도자가 집권한 북한의 정세와 정책이 어디로 갈지 참으로 짐작하기 어렵다. 그럴수록 품격 있는 외교태세로 상황을 관리해 국가의 매력과 저력을 쌓아나가야 한다. 그게 나라와 민족이 살길이다. 필자의 필생 소원이기도 하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국제정치학 국가대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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