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임우선]농촌 고령화 늦추고 출생률 높인 다문화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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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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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산업부 기자
임우선 산업부 기자
농촌진흥청 농촌환경자원과에서 여성 결혼이민과 다문화를 연구하는 양순미 연구사.

2006년 양 연구사는 한국의 국제결혼 실태를 취재하러 온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자를 만났다. 그는 한국의 국제결혼이 반인륜적이며, 국제 인신매매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곤란한 상황이었다. 미국 기자는 인터뷰 후 현장 견학을 요청했다. 양 연구사는 그를 데리고 전북 남원의 농촌에 갔다. 거기에는 ‘베트남 처녀는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아찔했다.

하지만 지역주민과 인터뷰를 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마을의 한 노인은 “외국인 신부가 우리 마을에 와 20년 만에 동네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논밭에서는 한국인 시어머니와 외국인 며느리가 함께 농사짓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미국 기자의 취재방향은 ‘성적 유린’에서 ‘한국 농촌의 공동화(空洞化)’ 문제로 바뀌었다.

양 연구사는 5년 전 ‘그 일’ 이후 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적 인식을 바꾸려면 무엇보다 이들이 한국사회에 기여한 부분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일 ‘다문화가족의 농촌 기여도 분석지표’라는 것을 개발해 발표했다.

이 지표는 말 그대로 한국으로 시집 온 외국인 여성들이 우리 농촌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를 수치로 보여준다. 농촌지역의 고령화, 출생률, 생산가능인구 등을 이주여성 증가와 연계해 분석한 이 지표를 보면 외국인 엄마들이 한국 농촌사회에서 ‘슈퍼 맘’으로 활약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면 지역 농촌의 출생률이다. 지역 내 연간 총 출생아 수를 당해연도 가임여성(15∼49세) 수로 나눈 뒤 1000을 곱한 이 수는 2000년 53.11에서 2005년 40.11로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결혼이민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아이를 낳기 시작하면서 2010년에는 47.61로 되올랐다.

결혼이민 여성들은 농촌 여성인구 고령화를 늦췄을 뿐 아니라 농촌의 생산가능인구 감소세를 완화하는 데도 기여했다. 실제 정부 통계에 따르면 농촌에 사는 결혼이민 여성의 69%가 농사일을 한다. 일하지 않는 나머지는 대부분 아이를 키운다.

“농촌에 가면 하루 8시간, 10시간씩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외국인 엄마들이 많습니다. 몇십 년 전 우리 한국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양 연구사)

한국 엄마들보다 더 한국 엄마다운 일을 하고 있는 농촌지역의 외국인 엄마들.

새해에는 진심으로 이들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한국사회의 더 큰 포용력을 기대해본다.

임우선 산업부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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