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소통 없이 ‘모시는’ 박근혜로는 救黨 어렵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5일 03시 00분


한나라당이 쇄신 방향을 놓고 깊은 내홍에 휩싸였다. 김성식, 정태근 의원이 재창당 요구가 거부되자 탈당을 선언하면서 쇄신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박근혜 전 대표가 어제 쇄신파 의원들을 만났지만 쇄신 노선을 둘러싼 먹구름은 쉽게 걷히기 어려울 것 같다.

쇄신의 강도와 방향을 놓고 수도권과 영남권 의원들 사이에 온도차가 크다.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권보다 수도권 의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더 크다. 강남 3구와 용산구를 빼놓고 전패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가 수도권 의원들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탈당을 선언한 김, 정 의원이 서울 출신이고 후속 탈당설에 오르내리는 의원도 대부분 수도권 출신이다. 박 전 대표가 쇄신파 의원들을 만나 재창당을 뛰어넘는 당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한 것도 이런 불안기류를 의식한 조치다. 박 전 대표와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은 엄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홍준표 대표 체제는 출범 5개월 만에 무너졌다. 근본적 변화가 없으면 누가 조타수가 되더라도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박 전 대표가 전면에서 쇄신을 주도해야 한다는 데 당내 공감대가 모아졌지만 일부 친박계 의원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맡을 박 전 대표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하라고 주장한다. 비대위에 내년 총선 공천권을 포함한 실질적 권한을 넘겨줘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비대위 체제에 어떤 조건을 붙이는 방식으로는 당의 화합을 이룰 수 없다. 박 전 대표가 위기에 처한 당을 살리는 구원투수로서 공천권에 초연한 모습을 보일 때 당원과 국민은 감동을 느낄 것이다. 박 전 대표는 2004년 천막당사 시절에도 비례대표 공천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음을 상기하기 바란다. 박 전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하면 공정성 시비를 촉발하고 2008년 같은 공천 파동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당내에선 일부 친박계 의원이 당내 입지에 따라 박 전 대표의 뜻을 왜곡한다는 시각도 있다.

친박계 의원들은 박 전 대표를 “모셔 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신다’는 말 자체가 봉건적 냄새를 물씬 풍긴다. 소통없이 ‘모시는’ 폐쇄적 스타일로는 구당(救黨)이 힘들다. 박 전 대표를 만나려면 미로 찾기를 해야 하고, 박심(朴心·박 전 대표의 뜻)을 좇느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소통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박 전 대표가 모처럼 오늘 의총에 나오는 것도 소통의 진전이지만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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