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하태원]초코파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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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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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는 전 세계 60여 개 나라에 팔려 나간다. 초코파이가 베트남의 제사상에 오르고 중국에서는 결혼식 답례품으로 애용된다. 러시아 어린이들은 초코파이가 너무 맛있어 한국 회사에 취직하고 싶어 할 정도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에게 행복한 미소를 가져다주는 과자이면서 지난해 지진으로 생필품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칠레 사람들의 허기를 달랜 희망의 과자다. 백두산 중국 지역 산장의 간식코너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된 것도 초코파이다.

▷1974년 처음 나온 초코파이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즐겨먹은 대표 과자로 오랜 세월 군림했다. 140억 개가 팔린 A사의 초코파이 봉지에 적힌 ‘정(情)’은 가장 성공적인 광고카피로 통한다. 하지만 세월 이길 장사 없다고 40년 국민간식도 단맛보다 건강식을 선호하는 사회 풍조 속에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군대에서 가장 맛있는 간식 1위 자리도 ‘뽀글이’(봉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라면)에 내줬다는 소식이다.

▷휴전선 북쪽 땅에서 초코파이는 새로운 힘을 발휘하고 있다. 바람의 진원지는 개성공단이다. 월평균 소비되는 개수가 600만 개를 넘었다. 원래 공단 근로자 4만6000명이 간식으로 먹기 시작했는데 일부가 북한 장마당(사설시장)에서 팔리기 시작하면서 북한 주민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근로자 1인당 하루 2, 3개씩 나눠 주다 생산성과가 좋으면 ‘인센티브’로 하루 10개 이상 주는 업체가 생기면서 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초코파이를 아껴뒀다가 가족과 나눠먹거나 순번을 정해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계(契)까지 생겨났다.

▷자본주의 분위기 확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김정일 정권이 최근 근로자 인센티브를 초코파이 대신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시장을 통해 ‘남한의 맛’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 인민들이 연장근무, 휴일근무로 힘들게 번 과자까지 빼앗으려는 치졸한 짓이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때처럼 긴장이 고조되면 일자리를 잃을까 노심초사하며 더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 북한 정권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처럼 ‘초코파이 혁명’이라도 일어날까봐 두려운 모양이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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