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을 들며/권남희]감을 놓아두는 계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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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 수필가·월간 한국수필 편집장
권남희 수필가·월간 한국수필 편집장
잘 익어가는 가을이다. 낙엽 구르는 길가 붉은 감이 눈길을 끈다. 가을이 열리면 버릇처럼 떠나는 단풍 구경처럼 감도 몇 번 사먹게 되는 가을 과일 중 하나다.

상가 입구 노점에서 감 한 봉지를 산다. 산책하는 길, 감의 그 얇은 피를 벗기며 달고 시원한 과육을 먹는 맛에 흥분한다. 목을 타고 넘는 단맛에 길들여진 나는 마음이 급하다. 단숨에 한 개를 먹고 거푸 두 개까지 삼켰다.

문득 새소리가 청아하다. 아침 새소리는 더욱 맑아 마치 새벽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는 기분이다. 가을은 모든 것을 맑게 하는 기운이 넘쳐 소 발자국에 고인 물도 먹는다고 했다. 새소리를 들으며 감을 삼키니 가을 계곡의 맑은 물 한 사발을 마시는 듯하다.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노래 가사 ‘얘들아’를 따라 흥얼흥얼 한다.

건너편 길가 가로수에 새소리가 요란하다. 새들이 몰려들고 있는지 새소리는 흩어졌다 모였다 반복하며 나를 따라온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처럼 지지배배 소란하다. 감을 먹기가 미안해진다. 세 개째 감을 들었을 때 분명 나는 환청을 들었다.

“저 아줌마 봐. 혼자 감을 저렇게 많이 먹을 수가 있어?”

“아줌마는 원래 많이 먹어야 돼.”

“한동안 아저씨들이 산에 들어와서 무서웠는데 이제 아줌마들도 많이 와서 산나물이고 밤이고 다 챙겨 가잖아. 우리는 뭘 먹으라고….”

“인간들 이상해. 냉장고에 먹을거리 잔뜩 쌓아두고 왜 산에 와서 우리 것을 가져가는지 몰라. 그런데 식구도 없고 외식을 많이 하니까 먹지도 않아서 꼭 상한 다음 버리잖아.”

감 한 봉지를 들고 다 먹을 생각으로 시간을 끌며 천천히 걷는 나에게 새들은 아우성을 치는 듯하다. 나의 친정어머니도 새들이 경계하는 ‘인간’이 되어 가을이면 산으로 땡감사냥과 도토리 줍기를 다녔지 않은가. 그런 먹을거리들을 우리는 별식이라 이름 짓고 서슴없이 챙겨 두었다.

지난가을의 까치 한 마리가 생각난다. 까치 소리가 요란하여 베란다로 나가 보니 감나무에 남겨둔 감의 속살을 까치가 발라먹고 있었다. 요리조리 껑충거리며 나뭇가지를 타고 부리로 찍어대며 춤을 추었다. 얼마나 행복했을까. 까치는 한동안 감이 떨어질 때까지 찾아와 감 속살을 발라먹곤 했다. 신기하면서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던 일은 까치가 다 먹을 때까지 감 속이 비어 가는데 가지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여러 날 그대로 달려 있었던 것, 가을이 끝날 때까지 처음에 왔던 그 까치가 그 까치인가였다.

감을 놓고 가기로 한다. 어디다 둘 것인가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아이들 손에 닿지 않는 아파트의 비탈진 울타리 높은 쪽 돌 위에 띄엄띄엄 놓기 시작한다. 나뭇가지가 가려 주어 다행이다. 그야말로 감 하나에 새들의 행복이, 감 하나에 그들 가족의 가을이 풍요롭게 익어가기를 기도하는 시간이다. 철든 아이처럼 착해지기로 마음먹은 아침 감을 비운 손으로 뛰기 시작한다. 산짐승들이 먹이를 따라 농가로 내려오고 멧돼지가 살 길을 찾아 올림픽대로까지 오다 죽음을 맞는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빌 뿐이다.

헤르만 헤세의 시 ‘만개’ 한 구절이 비명처럼 스친다.

‘그냥 그렇게 놔 둬! 이득을 묻지 말고.’

권남희 수필가·월간 한국수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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