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후배가 대법관 되면 선배 사퇴’는 낡은 관행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6일 03시 00분


양승태 대법원장이 김용덕 법원행정처 차장을 대법관 후보로 제청하기 직전에 일선 법원장들을 만나 판사가 63세 정년까지 재판하는 평생법관제를 강조했다. 현재 법원장급은 대체로 사법연수원 9∼12기이고 김 대법관 후보는 12기이다. 자신보다 아래 기수가 대법관이 될 경우 사퇴하는 관행에 따라 김 대법관 후보보다 위 기수인 법원장들이 물러나는 사태를 막아보려는 대법원장의 의지가 담겨 있다.

올해 말까지 2명의 대법관이 바뀌고 내년에 또 대법관 4명이 교체된다. 기존 관행대로라면 올해와 내년에 걸쳐 법원장급의 대거 사퇴가 예상된다. 법원장은 30년 가까이 근무하며 오랜 경륜을 쌓은 법관이다. 이들이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인 50대 중후반에 나가버리면 법원의 역량은 큰 타격을 입는다. 옷을 벗은 선배 판사가 변호사로 개업하면 현직의 후배 판사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어 법조계의 고질적인 전관예우의 폐단도 뒤따른다. 기수 문화는 낡은 관료주의 유산으로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조직 관행과 무관치 않다. 이런 문화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 헌법으로 보장된 사법부에도 남아 있는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지법합의부 배석판사→지법 단독판사→고법판사→지법 부장판사→고법 부장판사→법원장→대법관으로 올라가는 판사 계급의 사다리를 개혁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

물론 평생법관제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승진 자리를 원하는 후배들의 보이지 않는 사퇴 압력을 감수한다고 해도 법원장을 하다가 옮길 자리도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2004년 최병학 당시 수원지법원장이 자원해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가는 순환보직제가 처음 시행됐으나 이후 흐지부지됐다. 법원장을 끝내고 내려오더라도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먼저 조성돼야 한다. 판사에게 평생법관이 되기 위한 유인(誘因)은 커지고 있다. 11월부터 전관예우 금지법이 시행되면 퇴직 후 1년간은 직전 근무지에서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게 된다. 보수를 많이 주는 로펌에도 갈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재판에 잘 승복하지 않는 현상은 경륜이 짧은 젊은 법관이 판결을 하는 것과도 관련이 깊다. 국민이 사법연수원을 갓 나온 새파란 판사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판사를 재판정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어야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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