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하태원]산사나이 박영석 돌아오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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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중국을 통해 찾은 백두산은 눈 천지였다. 백두산에는 9월 중순이면 벌써 첫눈이 내린다. 인근 옌지(延吉) 지안(集安)에서 단풍의 절정을 감상한 뒤 곧바로 백두산에 오르면 눈앞에 설국(雪國)이 펼쳐져 자연의 신비가 놀랍다. 해발 2750m에 있는 천지(天池)로 가는 등산로는 완전히 폐쇄됐다. 천지의 물이 만들어 낸 높이 67m짜리 비룡폭포 언저리까지 수없이 미끄러지면서 천신만고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눈바람 탓에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이하로 느껴졌다.

▷국토의 70%가 산인 한국은 태곳적부터 산과 친했다. 반도의 북측에 터를 잡았던 고구려가 첫 수도로 정한 곳은 해발 800m에 위치한 졸본성이었다. 산성까지 999개의 계단을 밟아 오르자니 이만저만한 등산이 아니었다. 100m의 직벽으로 둘러싸인 이 천혜의 요새로 오르는 네 갈래의 길을 오르고 올랐을 우리 조상은 모름지기 등산의 달인이었을 것이다.

▷산사나이 박영석 씨(48)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등정하던 중 연락이 끊겼다. 마지막으로 교신했던 내용이 “두 차례만 하강하면 다 내려온다”는 말이어서 더욱 안타깝다. 그는 2005년 히말라야 14좌, 남·북극 및 에베레스트,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정복해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이뤘다. 영하 40도∼영하 60도를 오가는 극한의 추위 속에서 100kg이 넘는 무게를 짊어지고 두 달가량을 견뎌 북극점도 밟았다. 그는 “도전하는 자가 세상의 주인”이라며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했다. 백두산에서 고작 영하 10도 정도에 얼어 죽을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나 자신이 새삼 부끄럽다.

▷에베레스트에서 실족해 이틀간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그의 일성은 “기다려라. 다시 간다”였다. 혈육 같은 대원들과 에베레스트 정복의 일념으로 다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종아리 근육이 터져 나가고 산소통 안의 산소가 다 떨어져도 ‘신들의 세상’을 갈망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기를 밥 먹듯 했던 그가 히말라야의 눈 속에 갇혀 있다. 사흘째 수색에도 진전이 없어 안타깝다. 졸본성에서 본 삼족오(三足烏)가 실제로 있다면 박 씨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부질없는 생각도 든다.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나 자신에게 도전했다”고 한 박 씨와 원정대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소망한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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