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위용]서울대병원 의사들의 충격적인 반성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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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위용 교육복지부 기자
정위용 교육복지부 기자
“어린아이들이 먹는 많은 약이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는다. 성인에 비해 사회적 약자이고 발병 빈도가 낮아 경제성을 이유로 소아용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대 강형진 교수(소아청소년과)의 말이다. 1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대병원의 의생명연구원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나왔다. 이날 의사들은 ‘한국의 의료, 과연 적정한가’를 주제로 의료계의 잘못된 관행과 의료행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강 교수의 말대로라면 의사들은 지금까지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은 성인용 약을 소아에게 자주 처방했다. 부작용을 부를 가능성이 있고, 환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데도 말이다. 소아청소년과를 다녀온 부모들이 놀랄 내용이다.

환자를 ‘봉’으로 여기듯이 검사를 남발하는 관행도 도마에 올랐다. 영상의학과의 이활 교수는 “방사선에 많이 노출되면 환자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가 있는데도 사용을 줄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요즘 환자들은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해보자는 권유를 병원에서 자주 받는다. 방사선 피폭 위험에도 불구하고 검사를 많이 할수록 병원 수익이 올라가는 구조와 관련이 있다.

대장항문외과의 박규주 교수는 “대장암을 치료할 때 기존 수술법보다 의료비가 6배 비싼 로봇수술을 남용하는 것은 경제적 논리 왜곡”이라며 “이는 로봇수술의 효과가 과대 포장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로봇수술에 들어가는 돈만큼 수술 효과가 뛰어난지는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다. 로봇수술을 고집하는 동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런 문제를 공개적으로 꺼낸 것 자체가 참신해보였다.

의료행위는 속성상 공급자 위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런 한계 때문에 서비스 공급자인 병원과 의사가 환자의 안전보다는 병원 경영 논리를 앞세우기 쉽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쏟아진 지적은 의사들 스스로도 문제라고 생각할 정도로 잘못된 관행이 적지 않고 뿌리 깊음을 보여준다.

의사들 사이에서 선뜻 꺼내기 힘든 얘기가 병원 안에서 논의된 것은 뒤늦었지만 다행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소에 아무 말 못하다가 심포지엄이라는 멍석을 깔아야 반성하느냐”며 진정성을 의심하는 환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잘못된 관행에 대한 고백과 개선 노력이 일회성 이벤트 수준에 머문다면 의료계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질 수 있다.

정위용 교육복지부 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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