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식량안보 화급한데 種子전쟁부터 밀려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7일 03시 00분


우리나라가 가입한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 협약이 내년부터 본격 적용돼 향후 10년간 국내 농가가 해외에 지불해야 할 종자(種子) 로열티가 8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99%가 일본 종자인 감귤을 재배하는 제주의 농가는 묘목 수대로 일본에 로열티를 내야 한다. 종자 비용은 재배 원가의 약 10%에 이르고 있어 로열티를 낸 만큼 소비자 부담이 커진다.

국내 4대 종묘회사는 1998년 외환위기 때 다국적기업에 인수합병됐다. 우리가 외국을 상대로 종자전쟁을 치를 무기를 상당 부분 상실한 셈이다. 중앙종묘가 개발한 청양고추는 회사와 함께 미국 세미니스(현 몬산토)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토종 종자를 우리가 역수입하기도 한다. 국내로 수입되는 미스김라일락은 1950년대 미국의 식물채집가가 북한산 정향나무 종자를 미국에서 개량한 것이다.

세계 종자시장에서 10대 다국적기업의 점유율은 1996년 14%에서 2007년 67%로 높아졌다. 다국적기업들은 첨단 기술을 동원해 기후변화에 잘 적응하는 종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의 듀폰은 강풍에도 꺾이지 않아 단위면적당 산출량이 두 배에 이르는 옥수수 종자를 개발 중이다. 종자전쟁에서 뒤지면 다국적기업의 씨앗을 비싸게 사오거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늑장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간 종자 개발 역량을 강화한다는 ‘골든시드’ 프로젝트를 내년에 본격 추진한다지만 많이 늦었다. 최근 딸기 종자 개량 등 성공사례도 있지만 주요 작물의 종자 국산화율은 여전히 낮다. 종자전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해외의존도가 높은 과수 및 화훼 종자,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성 식품으로 활용 가능한 고부가가치 종자 등의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세계적으로 식량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머지않아 식량전쟁의 시대가 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어느 나라든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국민의 삶이 위협받는다. 식량을 무기화하는 양상도 노골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식량자급률이 51%, 곡물자급률은 26%, 쌀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은 6%에 그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돈을 주고 곡물을 사오는데도 세계 곡물시장의 80∼90%를 점유하고 있는 카길 등 4대 메이저 곡물회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옥수수 밀 콩 등을 수입할 때 물량의 60%가량을 곡물 메이저를 통해 들여온다. 이들이 가격 인상 등 횡포를 부리더라도 맞서기 힘들다. 식량안보를 구축하는 일이 화급한 시점이다.

농업 경쟁력을 식량전쟁 대처 차원에서 강화해야 한다. 종자 국산화도 이를 위한 중요한 요소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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