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李 대통령 국정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7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은 유엔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김두우 신재민 씨 등 측근의 비리 의혹과 증폭되는 세계 경제위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했을 것이다. 측근 비리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 신뢰를 떨어뜨리고 임기 말 권력누수(漏水)를 부채질한다. 이 대통령이 거듭 강조해온 “임기 중 측근 비리는 없다”는 말이 점점 무색해지는 형국이다.

이 대통령은 어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세계 경제위기와 관련해 “위기감을 갖고 비상체제로 전환해 경제상황을 운영하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중심을 잘 잡고 리더십을 발휘해야만 각 부처가 유기적 협조 속에서 혼선 없이 비상경제 상황을 극복해나갈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신뢰와 권위를 잃고 레임덕에 빠져든다면 한국경제는 경제위기의 파도에 휩쓸려 버릴 수도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이 대통령부터 고해를 해야 한다. 정전대란 다음 날인 16일 이 대통령은 한국전력 본사를 방문해 “최고 대우를 받는 공기업에서 잘 먹고 잘 자며 이런 식으로 전기를 끊어도 되느냐”며 35분간 질책했다. 이 광경을 보고 이 대통령을 국정감사장에서 한전 사장에게 호통을 치는 야당 의원처럼 느낀 국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정전사태에 대한 실무적 책임은 한전과 전력거래소에 있지만 에너지 관리의 최종 책임은 지식경제부와 대통령에게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국방개혁 등 중요 국정과제에 대한 대통령의 행보도 소극적으로 비친다. 노무현 정부가 성사시킨 한미 FTA를 이 정부가 3년 넘게 질질 끌고 있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국방개혁도 머뭇거려선 안 된다. 올해 안에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군 구조 개편을 마무리해야만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기초를 다질 수 있다. 대통령이 한미 FTA나 국방개혁이나 관련 법안을 국회에 넘겨놓고는 “내 할 일은 했으니 나머지는 국회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국민 눈에 비치는 것이 사실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올해 8월 야당인 공화당을 상대로 힘겨운 부채상한 조정협상을 진행했다. 양당 상원의원을 백악관에 초청해 슈퍼볼 경기를 함께 관전하며 설득했다. 공화당 하원의원 3명을 집중 공략해 법안 통과에 필요한 60명을 가까스로 채웠다. 의료개혁안을 통과시킬 때도 강성 공화당 의원을 백악관으로 불러 설명했고 공화당 연수회에도 참가했다.

이 대통령은 여당이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야당이 협조하지 않아 주요 국정과제를 관철하지 못했다고 변명만 할 수는 없다. 이 대통령에게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다. 임기 말은 국정의 새 청사진을 내놓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꼭 이뤄야 할 것을 놓고 국민과 정치권을 상대로 “이것만은 꼭 하자”고 절박하게 호소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한미 FTA와 국방개혁 같은 중점 과제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짓고 역사의 평가를 받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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