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전 大亂日 염명천 전력거래소 이사장의 스케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6일 03시 00분


사상 초유의 대규모 정전 파동이 벌어진 이달 15일 염명천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오전 11시 반 사무실을 나갔다. 그는 과거 산업자원부와 지식경제부에서 함께 일한 공무원 출신 선배 5명과 서울 모 호텔에서 한가롭게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45분 회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40분가량 잡지사와 인터뷰를 했다.

염 이사장이 오찬을 하러 회사를 나가기 40분 전인 오전 10시 50분 전력 수급 비상 매뉴얼의 ‘블루 단계’가 발동됐다. 오후 1시 50분에는 위기 수위가 ‘레드 단계’로 높아졌다. 오후 2시 50분 순환 정전 협의가 이뤄졌고 10분 뒤 단전(斷電) 조치가 시작됐다. 염 이사장이 23일 국정감사에서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고 실토한 인터뷰를 하던 시간은 순환 정전에 들어간 시점이었다.

발전소의 건설, 운전, 정지, 보수(補修)에 관한 계획을 통제하는 전력거래소는 급전(給電) 운용을 책임진 기관이다. 전력 공급의 두뇌와 신경에 해당하는 급전지령소도 한국전력에서 전력거래소로 넘어가 있다. 이렇게 막중한 기관의 책임자인 염 이사장의 정전 대란일(大亂日) 스케줄을 보면 위기에 대한 인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15일의 이상 고온은 며칠 전부터 예상된 일이었음에도 전력거래소는 “갑작스러운 기온 상승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해 정전이 빚어졌다”며 군색한 해명을 했다. 이종훈 전 한전 사장은 “정지 중인 수력발전기는 1분, 세워둔 가스터빈발전기도 30분이면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면서 “전력거래소가 발전소에 긴급 추가 가동을 요청했다면 대처할 수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전력거래소는 2001년 4월 정부의 전력사업 구조조정으로 한전에서 떨어져 나왔다. 출범 후 1년가량 재임한 초대 이사장만 한전 출신 인사였고, 염 이사장을 포함해 2002년 5월 이후 임명된 4명의 이사장은 모두 산자부나 지경부 출신 퇴직 공무원이었다. 구조조정이란 명분 아래 퇴직 관료의 낙하산 인사 자리만 늘린 셈이다. 전력거래소를 다시 한전에 통합해서라도 종합적인 전력 관리 체계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

역대 정권의 경험에서도 보듯 대통령의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이 시작되면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나 임직원의 근무 기강이 해이해지기 쉽다. 퇴직 관료 낙하산 공공기관장들의 무사안일이 비단 전력거래소에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청와대도 대통령 임기 말에 나사가 풀린 징후가 역력하다. 청와대가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레임덕을 부정해 왔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임기 마지막 날까지 공직기강을 다잡고 국정을 꼼꼼히 챙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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