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언론사 여론조사, 대상자 검증 부실 문제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2일 03시 00분


언론사들의 선거 여론조사에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출마의사를 밝히지도 않은 인물을 잠재적 대권 주자 등으로 상정하고 조사 대상에 올리는 것은 잘못이다. 이달 초에 불었던 안철수 바람은 정치 지형을 크게 흔들었다. 안 씨는 단순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에 불과했으나 언론은 안 씨를 서울시장 후보에 포함시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가 서울시장 불출마 의사를 밝힌 뒤에는 차기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 넣고 있다.

선거전문가인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후보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여론조사를 하는 것은 이미지에 따라 인기투표를 해보라고 부추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많은 여론조사 응답자는 안 씨가 서울대 의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왔고,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나눠줬으며 젊은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청춘콘서트로 유명하다는 등의 몇 가지 피상적 정보와 이미지를 근거로 판단했다.

이런 식의 여론조사라면 언론이 지도자의 등장 과정을 심하게 왜곡할 소지마저 있다. 언론은 여론조사를 하기 전에 대상자들의 국가관 행정능력 등을 분석한 뒤 객관적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국민이 알아야 할 진실을 최대한 정확히 전달해 합리적 결정을 도와야 한다. 어제 서울시장 선거 출마 선언을 한 박원순 변호사에 대해 서울 시민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여권 쪽에서 출마 의사를 밝힌 이석연 변호사나 나경원 의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론이 이들의 진면목을 철저하게 검증해 알리고 난 뒤 여론조사에 나서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에도, 사회과학적 조사 원칙에도 부합한다. 원로언론인 남시욱 씨는 “안철수 박원순 등은 매스컴이 만든 영웅인 만큼 이제라도 다각적인 검증을 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후보자가 선거에 나서는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을 파헤친다. 과거 후보자가 했던 발언은 철저히 걸러지고 공약의 실천 가능성은 면밀히 분석된다. 미국의 한 지역일간지는 해당 지역 공직선거에 당선된 사람이 지도력을 보이지 못하자 “검증을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선진국에서 “언론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민주주의가 자칫 민의의 왜곡으로 본래의 취지를 잃고 표류하는 상황을 막아내는 언론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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