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인찬]‘엄마를 부탁해’를 번역원이 번역했다면…

  • Array
  • 입력 2011년 9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황인찬 문화부 기자
황인찬 문화부 기자
“프랑스에선 이제 한국 문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한국에서 문학작품을 직접 골라 완역한 뒤 현지 출판사에 출판 비용까지 주면서 ‘떠맡기는’ 번역 지원이 앞으로도 유효할까요?”

프랑스에서 13년 동안 한국 문학을 번역해 알려온 번역가 임영희 씨는 현재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주연)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이같이 꼬집었다. 국내의 한 출판 에이전시 대표도 “번역원이 그동안 해외 출간 자체에 의미를 둬 실제 판매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임 씨의 지적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번역원이 창립 10주년을 맞아 22, 23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5회 세계번역가대회를 연다. 임 씨를 비롯한 발표자들의 발표문을 미리 보면 해외 출판계에서 보는 한국 문학, 그리고 번역원에 대한 ‘애정 어린 쓴소리’가 가득하다.

번역원은 지금까지 28개 언어권, 486건의 작품을 번역 지원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신경숙 씨의 ‘엄마를 부탁해’ 등 해외에서 성과를 거둔 작품들은 대개 민간 에이전시와 해외출판사가 직접 협력해 만든 성과물들이다. 이유가 뭘까.

이번 대회에 참석하는 독일 남서부방송2(SWR2)의 문학담당 기자 카타리나 보르하르트 씨의 말에서 답을 유추해볼 수 있다. “무조건 ‘가능한 모든 것’을 내놓는 식으로는 의미가 없다. 그런 책들은 도서관과 학자들의 사무실 책장을 장식하겠지만 이를 ‘우연히 읽는’ 독자는 별로 만나지 못할 것이다.”

번역원은 2001년 한국문학번역금고와 문예진흥원 산하 한국문학 해외소개사업과 통합해 출범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이다. 해외에 한국 문학이 생소하던 시절에는 국내 작품을 해외에 출간하는 것 자체로 의미를 둘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를 부탁해’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이문열 씨의 단편 ‘익명의 섬’이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뉴요커’에 실리는 등 한국 문학의 해외 위상이 높아진 지금 번역원의 역할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 해 60억여 원의 예산으로 운영하는 번역원이 한국의 순수 문학을 번역 지원할 필요성은 여전하다. 하지만 지원 장르를 다양화하고, 해외 독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마케팅에도 더 큰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출판계의 목소리가 높다.

“작품의 원작과 번역의 완성도가 아무리 높아도 해외 독자와 서평가의 손에 들려지도록 적극 노력하지 않으면 상업적으로 성공 못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브루스 풀턴 교수가 번역원에 보내는 따끔한 충고다.

황인찬 문화부 hi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