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철희]남북 정상, 러시아에서 만나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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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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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정치부 차장
이철희 정치부 차장
며칠 전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남북문제를 푸는 데 유용한 수단”이라며 “추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추석 전 TV좌담회에서 “임기 중에 (정상회담을) 안 할 수도 있고,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원론적 발언이지만 그 가능성을 접지 않는 것은 남북 관계의 전환을 이루기 위해선 정상회담만 한 지름길이 없다는 데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류 장관이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기 위해 방법론적 유연성을 찾아보려고 한다”고 밝힌 대목은 주목된다.

정부 관계자들은 그동안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최근 이런 가이드라인에도 상당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 천안함과 연평도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다. 그동안 정부는 북한의 사과를 전제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류 장관은 “북한의 책임 있는 행동이 (정상회담) 협의 과정에서 이뤄지거나 회담 자체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되면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에서 직접 김정일의 결단을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고이즈미 식 대북 외교’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002년 9월과 2004년 5월 평양을 전격 방문해 일본인 납치에 대한 김정일의 사과를 받아내고 생존 피랍자와 가족을 데리고 나왔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오면 서운하게 하지 않겠다”는 언질 외엔 어떤 확답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방북했다.

둘째, 장소 문제다. 정부는 이미 정상회담이 두 차례나 이뤄진 평양에 다시 가는 것은 곤란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북한의 일방적 폭로인 탓에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의문이지만 5월 남북 비밀접촉 때 남측은 ‘6월 판문점→8월 평양→내년 3월 서울’ 정상회담 일정을 제시했다고 한다. 첫 만남 장소는 최소한 중립지대여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북한은 이미 김대중 정부 시절에 ‘판문점 정상회담’을 거부한 바 있다. “우리를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미군이 관할하는 지역에서 회담을 하자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남북이 아닌 제3국에서의 정상회담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김정일은 2002년 4월 방북한 임동원 특사에게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를 회담 장소로 제안한 바 있다. 그는 “거기엔 큰 호텔도 10개나 있다.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3국 정상회담을 열어 시베리아 철도 연결 문제를 논의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즈음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극동지방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주선할 수 있다”는 의사를 타진해오기도 했다.

셋째, 시간문제다. 대통령 임기 말 회담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게 참모들의 생각이다. 노무현 정부처럼 퇴장하는 정권의 졸속 회담은 안 하겠다며 “올해가 마지막 기회다”라고 말해왔다. 이런 데드라인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지난달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점화된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은 남북 정상회담의 조기 성사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한-러, 북-러 가스관 실무회담이 속도를 내고 있고, 이 대통령도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11월엔 한-러 정상회담도 열린다. 이런 기류 속에 러시아에서 가스관 사업을 매개로 한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검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철희 정치부 차장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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