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광영]“가습기 파문 얼마나 됐다고…” 바뀐게 없는 보건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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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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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기자
신광영 사회부 기자
얼마 전 임산부 4명이 원인 미상의 폐렴으로 숨진 이유가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보건당국의 조사 결과가 발표돼 충격을 줬다.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사용한 살균제가 역설적으로 산모와 태아의 숨통을 죈 ‘위생의 역습’이었던 셈이다.

살균제로 청소한 가습기를 틀면 일부 살균성분이 함께 방출돼 인체에 흡수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인체에 해를 끼칠 법도 한데 살균제는 정부 관리 품목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의 치명적인 영향에 대해 들여다보는 정부 기관이 없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일이 터지고 나서야 “가습기 살균제가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하지 못했다. 앞으로 잘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산모와 태아의 목숨을 대가로 치른 때늦은 반성이었다.

청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종 위생용품이 늘고 있지만 정부 관리 능력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례는 그뿐만이 아니다. 공기청정기나 야채·과일세척기는 일부 제품이 오존을 공기 중에 방출해 인체에 해롭지만 아직 이렇다할 오존 배출 허용 기준이 없다. 성균관대 의대 사회의학교실 정해관 교수는 “오존은 몸속의 나쁜 균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균을 죽인다”며 “오존을 마시면 폐 안에 있는 세포가 죽어 천식 환자나 노약자들에게 치명적”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제품들이 몇 년간 아무 제재 없이 팔리다 일부 소비자가 불안을 호소하자 정부가 뒤늦게 나섰다. 지식경제부는 6월에야 오존 배출농도가 높은 야채세척기와 공기청정기에 개선 권고를 내렸다.

요즘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과일용 세정제는 아직도 아무 대책이 없다. 과일세정제는 물에 씻더라도 덜 씻긴 일부 성분이 몸에 흡수되기 때문에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도 과일세정제 용기엔 ‘야자나무 추출물’ 등 두루뭉술한 표현이 많다. 식약청은 중금속과 산성도(pH) 등 5가지 항목만 검사할 뿐 식품 추출물의 성분은 따져보지 않는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최경호 교수는 “식품 추출물이라도 독성이 있는 경우가 많아 어떤 물질이 혼합돼 있는지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식약청 관계자는 “사람이 먹어도 되는 식품에서 추출한 것인데 무슨 검사가 더 필요하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러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파문을 겪고도 보건당국의 안일한 태도는 별로 바뀐 게 없어 보인다.

신광영 사회부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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