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곽노현의 僞善이 진보의 본질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30일 03시 00분


작년 6·2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곽노현 후보의 유세는 “부패 비리 꽉 잡는 진보 단일 후보 곽노현”이라는 소개말로 시작했다. 선거 하루 전날에는 방송 인터뷰에서 “서울시교육감 후보 중 부패와 싸워본 사람은 나 말고 없다”고 강조했다. 취임 후 그가 시교육위원회 첫 보고에서 “교육감이 선봉에 서서 비리를 척결하고 반부패 교육 행정을 실현하겠다”고 다짐한 것도 우리는 기억한다. 취임 1년을 맞은 올 7월에는 “반부패를 위해선 윗물이 맑아야 하는데 그 점에서 나는 누구보다 자유롭다”고 자랑했다.

“부패의 곰팡이에 햇볕을 비추겠다”며 ‘반부패 혁신 전문가’로 자처한 곽 교육감이 후보 단일화 대가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억대의 돈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 이제 와서 그는 ‘법은 인정 있는 법이어야 한다’며 자기 보호막을 쳤다. 입만 열면 비리 척결을 외치던 사람이 당선을 위해 다른 후보를 매수했으니 위선(僞善)을 넘어 국민을 상대로 벌인 사기가 아닐 수 없다. 민주당 박주선 최고위원이 “진보교육감에 대한 기대가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처럼 무산돼 국민적 충격이 너무 크다”고 했을 정도다. 좌파 교육감 후보들 간에 단일화가 이뤄진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없었는지 의문이다.

곽 교육감의 이중성은 특목고 정책에서도 드러났다. 선거운동 때부터 외국어고교 폐지 등 수월성(秀越性) 교육에 반대하는 정책을 내놓았지만 정작 자신의 아들은 경기도 모 외고에 보냈다. 한 인터뷰에서는 “(외고, 자사고로) 선발된 아이들에게 사회는 선민(選民)의식을 부추긴다. 엘리트주의의 기승은 민주주의의 축소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감의 힘으로 평등교육을 밀어붙이면서 자기 아들은 ‘민주주의를 축소시킬 수 있는 엘리트’로 키우는 ‘강남 좌파’의 전형적 위선이 아닐 수 없다. 그를 믿고 정책에 순응하는 사람만 손해를 보는 셈이다.

곽 교육감은 “입시경쟁과 학교 서열화를 막아 학벌사회의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논리로 16개 시도교육청 교육성과 평가에서 ‘꼴찌 서울’을 만든 책임을 피하고 있다. 그제 기자회견에서는 “저에게 항상 감시가 따르는 것은 이른바 진보교육감, 개혁성향 인물이라는 이유 때문”이라며 마치 정치탄압이라도 받는 양 호도했다.

곽 교육감 코드인사의 최대 수혜자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애써 침묵하는 모습이다. 부대변인이 기자들의 질문에 “과도한 정치공세나 여론몰이에 휩쓸리지 않고 사실 확인 중”이라며 애매모호하게 답변했다. 우파 성향인 공정택 전 교육감 비리가 터졌을 때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서는 것만으로도 교육계 수장이 할 짓이 아니다”며 호되게 공격한 것과 대조적이다.

곽 교육감은 어제 “의연하고 당당하게 검찰 수사에 임하겠다”며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무너진 법의식과 마비된 양심으로 교육감직을 계속 수행하겠다는 얘기다. 검찰청에 수사 받으러 들락거리고 법정의 피고인석에 선 서울교육 수장(首長)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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