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형삼]‘소심한 보수’ K의 고백

  • Array
  • 입력 2011년 8월 15일 19시 55분


코멘트
이형삼 논설위원
이형삼 논설위원
K는 우울하다. ‘통계적’으로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 그는 스스로를 보수라 여긴다. 보수의 행복지수는 대개 진보의 행복지수보다 높다고 한다. 미국에선 대통령선거 직전 공화당 후보의 패배가 확실시돼도 공화당원이 느끼는 행복도가 민주당원보다 높게 나온다. 보수는 사회적 불평등을 불가피하다고 보지만 진보는 그런 현실에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K가 다음 대권주자로 점찍은 이는 여론조사 지지도가 높다. 그래도 K는 우울하다. 속 시원히 보수를 자처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먹고살 만한 가정의 아이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고액과외 받아 대학 들어간 부유층 자녀에게 반값 등록금 혜택을 주면 사회적 불평등은 더 커진다고 본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빈곤층을 포함한 모두의 주머니에서 세금을 더 털어내야 한다. K는 그 용도로 내게 될 세금보다 많은 액수를 복지기관에 직접 기부할 용의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대놓고 반대하긴 껄끄럽다. 아이가 무상급식과 무관한 고교생이고 회사가 직원 자녀의 대학등록금을 지원하기에 ‘못 먹는 밥에 재 뿌리는’ 것으로 비칠까 부담스럽다.

체벌 금지를 골자로 한 진보성향 교육감들의 학생인권조례는 대체로 지지한다. K는 1970, 80년대에 남자 중고교를 다니며 교사들의 폭력에 진저리를 쳤다. 자식 세대에 와서도 체벌 논란이 빚어지는 게 답답하다. 체벌은 일단 허용하면 교사에겐 중독성을, 학생에겐 내성을 기르면서 강도를 더해간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표출하면 진보 교육감 편든다고 보수의 정체성을 의심받지 않을지 조심스럽긴 마찬가지다.

K는 1980년대 중반에 대학을 다니며 가투(街鬪)를 몇 번 뛰었을 뿐 운동권에 몸담지는 않았다. 1987년 6월 항쟁은 병영에서 지켜봤다. 그런 연유로 운동권의 자기희생에 무거운 채무감을 갖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태를 보며 한숨만 내쉰 것도 부채의식 탓인지 모른다. 조선(造船)은 철판 위의 토목공사다. 그래서 ‘배를 짓는다’고 한다. 일감이 있으면 사람을 늘리고 일감이 없으면 줄이는 게 토목업의 속성이다. 노사가 합의한 사안을 놓고 제3자들이 몰려가 가타부타 하는 건 또 뭔가. 하지만 200일 넘게 크레인 농성을 이어가는 저 무모한 자기희생이 갑갑하고 안쓰러워 말을 아낀다.

그의 계좌에선 10여 년째 매월 진보 시민단체로 회비가 빠져나간다. 권력기관의 부패 고발에 치중하던 이 단체가 갈수록 좌편향으로 기울어 불만이지만 당장 탈퇴할 생각은 없다. 이 정도의 일탈을 포용하지 못하고 은행으로 달려가 자동이체를 해지하자니 스스로 작아 보여 그러지 못한다. 방향은 가끔 빗나가도 이슈를 선점해 바람몰이를 하는 그들의 역동성에 대리만족하는 것일 수도 있다. 보수진영에선 눈 씻고 봐도 그런 정당도, 시민단체도 없다.

K는 2000년 미국 대선 때 공화당이 내세운 ‘온정적 보수주의’를 떠올린다. 복지 증진을 위한 높은 세(稅) 부담이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므로 감세 등을 통해 국가 재정과 기업 수익의 파이를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 한나라당의 무분별한 ‘좌클릭’과는 영점 표적이 다르다.

K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자신과 같은 ‘소심한 보수’ ‘풀죽은 보수’들이 모처럼 결집해 뚝심을 보여줬으면 싶다. 시장과 시의회가 풀지 못한 일을 시민이 해결하자는데 왜 이게 ‘나쁜 투표’인가. 결과야 어떻게 나오든 투표율 33.3%를 넘겨 투표함이 열리기만 하면 당당하게 “나는 보수다”라고 커밍아웃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