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제균]2012년 대선의 召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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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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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정치부장
박제균 정치부장
역사의 신이 있다면 그는 이 나라의 대통령 선거를 단 한 번도 허투루 치르게 하지 않았다. 전체주의 정권을 거쳐 비로소 정상적인 대선이 치러진 1987년 이후 모든 대선에는 시대적 소명(召命) 같은 것이 있었다.

1987년 대선의 소명은 두말할 필요 없이 민주화였다. 그해 6월항쟁과 6·29선언에 따른 대통령 직선제의 열매였다. 1992년 대선의 소명은 문민화(文民化). 우리는 군인 출신이 아닌 대통령을 얻었고, 마침내 군부 쿠데타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됐다.

1997년 대선은 호남의 해원(解寃)굿이었다. 수십 년 응어리져 더께 앉은 호남의 한은 호남 출신 대통령의 탄생으로 녹아내렸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앞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었다.

대선마다 시대적 소명 있어

2002년 대선에선 처음으로 정치권력이 ‘시민권력’에 자리를 물려줬다. 정치권이란 ‘그들만의 리그’에서 독점하던 권력이 노무현을 앞세운 시민권력으로 하방(下放)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시민권력에 올라타 칼자루를 쥔 좌파세력은 무능했고, 무엇보다 무책임했다. 그들이 아무렇게나 휘두른 이념의 칼은 우리 역사의 정통성에 생채기를 냈다.

하여 2007년 대선의 소명은 정상화(正常化)였다. 상처 나고 비뚤어진 역사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국민은 이념과잉 세력과는 정반대의 실용주의 정권을 택했다. 그러나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실용 정권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대기업 프렌들리’로 변질됐고,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로 귀결돼가고 있다.

그러면 내년 대선의 소명은 뭘까.

역사의 소명은 대체로 사후(事後)에 밝혀지지만, 대한민국의 기존 패러다임을 뜯어고치는 선거가 됐으면 한다. 정치권에선 나라의 주춧돌(초석·礎石)을 새롭게 놓는다는 의미에서 ‘정초(定礎) 대선’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왜 이런 말까지 나오게 됐을까.

2008년과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대로는 안 된다’, 즉 시장에 떠맡기는 기존 경제시스템으론 안 된다는 비상벨을 울리고 있다. 더구나 이런 위기 때마다 유독 한국이 더 휘청거린다는 사실은 우리 경제의 대외적 취약성을 웅변한다.

국내적으로는 대기업을 제외하곤 쓸 만한 일자리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 이 때문에 계열사를 늘려가며 자손만대 누리려는 재벌의 독점 폐해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데 민의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자본주의 본산 미국에서도 거대기업 AT&T의 독점 폐해가 너무 심해지자 법원의 명령에 따라 8개의 독립회사로 쪼갠 일이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쓸 만한 일자리는 민(民)의 본(本)이자, 국가를 떠받치는 토대다. 청년 백수, 혹은 청년 백수를 자식으로 둔 부모가 ‘뭔가 확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 들 때, 포퓰리즘은 ‘팜 파탈’같은 매혹으로 다가온다. 독(毒)인 줄 알면서도 끌릴 수밖에 없는.

‘定礎 대선’이란 말도 나와

국제정치 상황마저 새로운 도전을 요구한다. 슈퍼 파워 미국은 21세기 들어 제국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 자국 경제문제에 얽매여 세계에 대한 악력(握力)이 약해졌다. 그 틈을 타 동북아에선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앞세운 중국의 ‘그립’이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다. 우리의 제1외교전략인 한미동맹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한국의 대선은 그 폐해가 적지 않지만,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실마리를 잡을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변화를 요구하는 폭발적인 민의를 담아 녹여낼 수 있는 용광로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대로는 안 된다’는 민의의 용광로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조해낼 지도자가 나올 때가 됐다. 그게 2012년 대선의 소명이다.

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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