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자기실현적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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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9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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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이라도 먼저 읽어라. 당장 재앙에서 벗어나라.’ 올해 초 출간된 ‘애프터쇼크’는 카피부터가 너무 도발적이었다. 저자들은 2006년 ‘미국의 거품 경제’라는 책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해 유명해진 경제학자 데이비드, 로버트 위더버 형제다. 이들은 ‘애프터쇼크’에서 2008년 금융위기는 곧 다가올 진짜 위기의 서막에 불과하다며 달러 주식 부동산 등 모든 자산이 폭락하는 사상 최악의 시나리오가 닥친다고 예언했다.

▷경제 현상에서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란 기업이나 국가경제, 주식시장의 부침(浮沈)이 사람들이 믿는 대로 진행되는 현상이다. 저축은행 사태 때의 ‘뱅크런’이 대표적이다. 어느 저축은행이 부실하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예금을 찾기 위해 은행으로 몰려가고, 멀쩡하던 은행이 진짜로 부실해진다. 다가올 진짜 위기에 대비해 모든 자산을 현금화하라고 주장했던 위더버 형제의 경고도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가능성이 있다.

▷자기실현적 예언은 경기가 좋을 때보다 나쁠 때 위력적이다. 행동경제학은 사람은 본능적으로 손실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1000원의 이득을 본 기쁨보다는 같은 금액의 손실에 사람들이 더 마음 아파한다는 얘기다. 일본 마케팅전문가 루디 가즈코는 “불안할수록 지출을 보류하는 것은 진화론으로 볼 때 당연하다”고 말한다. “꼬리감기원숭이도 미래가 불안할 때는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불안과 손실 회피는 뇌의 같은 곳에서 작용한다.”(루디 가즈코의 ‘불안한 원숭이는 왜 물건을 사지 않는가’)

▷주가 폭락에 직면한 미국에서 소비자의 불안심리가 경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그제 보도했다. “상황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사람들이 지갑을 깔고 앉아 있고 이런 행동 때문에 상황이 실제로 나빠지고 있다”고 컨설팅회사 A T 키어니 회장인 폴 로디시나는 말했다. 부채상한 증액법안이 미국 상하원을 통과한 것은 좋은 신호인데도 오히려 주가가 폭락한 것이 이런 결과다.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참여자들이 공연한 불안감으로 자기실현적 예언에 멍석을 깔아줘서는 안 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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